편지로 띄우는 말씀 (2000. 5)

아름다운 패자(敗者)

김영운 목사
(발행인 / 공동체성서연구원장)


       

인류의 역사가 흥망성쇠로 점철되듯이 인간의 삶 또한 성패와 기복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모두가 바라는 것은 흥성과 승리입니다. 쇠망과 패배를 원하는 이는 없습니다. 다만 성공하고 승 리하였을 때와 실패나 패배를 맛보게 되었을 때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 다. 성패에 상관없이 얼마나 의연하게 중심을 잃지 않느냐에 따라서 인품을 가름할 수 있기 때 문입니다.

어느 신학자는 "고난"을 두고 말하기를 신학적 방법의 시금석이라 하였습니다. 실은 신앙의 시 금석이요, 사람됨됨이의 시금석이라 해도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실패나 패배가 위기를 안겨 주 는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패배는 진실을 끌어안게 하는데 큰 계기 를 마련해 줍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풍조가 승리와 성공과 발전만을 강조하면서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을 재단하게 되 니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이겨야만 되고, 그러자니 부끄러운 승자가 되는 편이 아름다운 패자 가 되는 편보다 낫다는 사고방식이 판을 치게 됩니다. 그러나 유장한 역사의 흐름을 잠시 멈춰 서 한강 물을 바라보듯이 관조하노라면, 부끄러운 승리와 성공은 택할 것이 못된다는 진실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에세이스트 로저 로젠블랏트는 말합니다. "아름다운 패자에 대하여 주요 요건 은 사회가 그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그가 성실하게 소신을 가지고 살았고 더욱이 고귀한 대의명분을 지키려다 실패하였다는 점에 미덕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만큼 아 름다운 패자를 인정하고 존중하려면, 한 사회가 얼마나 건강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 러나 역시 단초는 아름다운 패자를 자임하고 나서는 소수의 개인들에게서 마련되어야 하는 것 또 한 어길 수 없는 진실입니다.

우리는 지나온 세기말의 두어 세대 동안 아름다운 패자는 설자리가 없는 풍토를 만들어 왔습니 다. 그런 풍조의 끝자락을 우리는 이번에 치른 4. 13 총선 마당까지 걸쳐놨습니다. 국민에게 꿈 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일과는 상관없이, 부끄러운 승리를 거두더라도 당선만 되면 그만이고, 권 력만 잡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승리는 역사의 심판을 받습니다.

소비자에게 안전과 행복을 느끼게 해야할 기업이 영리에만 급급하여 실망과 불쾌감만을 안겨주 면서도 재벌의 아성만 지키는 부끄러운 성공은 곧 물거품이 될 수 있음을 최근의 구조조정이 보 여 줍니다. 순진 무구한 신자들에게 진정한 위로와 영혼의 돌봄을 보장해 주지는 못하면서 물량 적 성장과 성공에만 기울었던 거대교회 현상도 부끄러운 승자의 말로를 걸을 수 밖에 없음을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사회나 교회, 어디서든지 아름다운 패자를 존중하며, 그 미덕을 예찬하는 풍토가 새롭게 시작되 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예로부터 우리가 기려온 선비정신이 이에 다를 바가 아닙니다. 부활이 신 예수를 증언하는 제자들의 마음이 같은 바탕이리라 생각됩니다. 전통에만 충실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울 때 십자가의 신학을 정립하고 고난과 박해속에서 부활을 증언한 사도 바울의 정 신이 드러내는 힘이 같은 줄기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소서"라고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신 예수의 뜻이 다름아닙니다. 끝내 부활하신 이후에도 "갈릴리" 로 먼저 가신 뜻이 오늘날 아름다운 패자들의 모습에서 확인될 수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것일까 물으며 다시 생각합니다. 어쨌든 아름다운 패자가 늘어나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