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띄우는 말씀 (2001. 1)

새해에는 용기와 희망을!

김영운 목사
(발행인 / 공동체성서연구원장)


       

최근에 어느 모임에서 만난 젊은 기업인 한 사람이 요즘 우리의 상황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 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둘러 보면, 그 어디서도 정직을 찾아 보기가 힘듭니다. 현 정부가 하 는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던 오늘의 야당이 비난을 일삼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같은 잘못 을 되풀이 하지 않을 때 비판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국민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정부가 잘못하는 것을 시민들도 똑같이 하면서 비판한대서야 무엇이 개선되고, 개혁 이 되겠습니까? 선진국을 쉽게 설명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회 한 상자 를 비싼 값을 치루고 샀는데, 맨 윗줄에 놓인 사과와 맨 밑바닥에 깔린 사과가 같은 품질이라야, 그게 선진국입니다. 너무 일반화 시키는 것 같지만, 진실을 이런 데서 찾을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정을 둘러보면, 과연 이 민족에게 희망이 있는가 하고 묻고 싶습니다."

그 어디서도 정직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말이 따갑게 들렸습니다. 성서적으로 말하자면 "작은 일에 충실하라"는 말씀이 생각나지만 세상이 아무리 우상숭배로 물들고 가치관이 전도되고, 정신 문화가 타락했더라도 "바알에게 무릎 끓지 않은 칠 천명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 습니다. 그러나 이 말 속에 있는 진실은, 실상은 현실이 희망을 잃은 상태라는 무서운 진실입니 다. 우리에게 과연 희망은 있는가, 대한민국에 희망은 있는가 하고 묻게 됩니다.

벌써 오래 전에 미국 뉴욕 소재 유니온 신학교 학장을 지낸 윤리학자 도널드 슈라이버(Donald Shriver)는 도시화 현상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도시에 희망은 있는가?" 라는 글을 쓴 일이 있습니 다. 그는 물론 미국 사회 현실을 비판하면서 글을 썼지만, 기독교 신자들이 기독교적 윤리와 가 치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희망이 있겠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결론에 가서 그는 준 엄하게 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희망이 있으려면, "크리스챤이냐 넌크리스챤이냐" 가 아니라 "인 격자냐 비인격자냐(person or non-person)가 문제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희망이 없다고 느낄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 을 것입니다. 그러나 핵심은 사회구성원 일반은 물론이요 특히 공직에 있거나 지도력이나 영향력 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거나 언필칭 지식인들이 "인격"의 품위를 목숨처럼 지키며 사는가 아닌가 에 달려 있다고 하여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이렇습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우리 사회를 성찰할 때, 신용의 마지막 보루인 은행과 소위 수 많은 "종금"회사들이 국민 신뢰를 잃은 것은 오래 전 일입니다. 그 다음으로 남은 금융 감독원 마저 신뢰를 잃었고 신용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자부 해온 H그룹이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을 실망 시키고 있는 것이 한 두 번, 하루 이틀이 아 닙니다. 법과 정의를 실천하며 공권력을 막중하게 행사하는 검찰이 국민의 불신을 사게 된 아픔 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양심의 보루라고 할 이 땅의 종교, 특히 개신교 교회가 물량주의, 교권주의에 덧붙여 세습 문제까지 모두에게 실망을 안겨 주 고 신뢰와 존경심을 잃은 것입니다.

이제 무엇으로 우리를 돌이킬 수 있겠습니까? 희망 없음에서 희망찬 내일로 가려면 어찌 해야 하겠습니까? 더 늦기 전에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공직자와 종교인, 그리고 지도급 인사들로부터 온 국민이 "인격"을 담보로 정직을 되찾아야 합니다. 오로지 나라를 살리려는 일편단심으로 순수 하고 투명한 삶을 치열하게 살기 시작해야 합니다. 정당한 보수와 이익을 챙기는 것 외에 그 어 떤 것도 하늘과 역사 앞에 부끄러운 일임을 깊이 새기며 위기의식과 함께 역사의 심판을 의식하 는 미래지향적 역사의식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부끄러운 나라를 우리의 자녀손들 에게 물려줄 수 밖 에 없다는 일대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불신과 냉소주의를 씻어내고, 밝아오는 새해와 더불어 진정한 용기와 희망을 되찾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