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띄우는 말씀 (2001. 2)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김영운 목사
(발행인 / 공동체성서연구원장)


       

요즘 우리네 모습을 둘러보면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를 묻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 나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을 자나깨나 생각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골똘히 생각합니다. 그러자니 자연히 관심을 집중하게 됩니다. 뭔가를 성취하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집중하기 마련입니다. 특히 자기 자신과 부합되거나 일치하는 일이라면 더욱 더 집중하게 됩니다.

결국 어디에 집중하는가를 보면 그의 의식과 가치관을 알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나라 지도자들이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저으기 걱정이 됩니다. 그들이 "힘을 모으고, 전략을 개 발하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원형심리학자 제임스 힐먼이 묘사하 는 것처럼 이른바 "영웅적이거나 허큐리스적인 행동"을 드러내는데, 그들은 영락없이, 뭔가를 이기 적인 마음으로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 여지없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는 물론 나쁜 의미로 이 말을 씁니다. 즉, 야수적인 힘을 쓰고, 속좁은 (합리적) 비전을 지닐 뿐이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이와 같이 이기심과 아집으로 파워를 추구하는 것과 대조적인 면을 생각하면서 토마스 무어가 말하는 영혼의 파워(The Power of Soul)를 생각합니다. 커다란 저수지 같다고 할 수도 있고, 급 류를 이루는 강물의 파워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힘은 자연스럽고, 조작하지 않고, 미지 의 근원으로부터 나오는 힘입니다. 이런 종류의 힘을 가지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우리가 주의 깊은 관찰자가 되어서 얼마나 영혼이 삶 속으로 뚫고 들어오려고 하는가를 주목하는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그 힘을 명료화시키고 구조화시킬 예술적 수단을 찾고, 그 일에 대한 전적인 책임 을 지며, 영혼이 지닌 의도성과 필요성을 믿되, 우리는 다만 그것을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하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합리적으로 계산하고 생각한 나머지 얻은 결론이 전부인 것처럼 행 동하는 것이 얼마나 영혼을 상실하는 결과에 빠지고, 현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혼란에 빠지게 되 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부분을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와 연관 없이 부분 을 아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무지입니다" 이런 격언이 지닌 뜻을 되새기면서 우리를 성찰합니 다. 평범한 시민도 아는 바이지만, 개인의 이익만 저마다 구하다 보면, 그것도 성취하지 못합니 다. 그러나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개인의 이익도 성취하고 공동의 선도 이룹니다. 그 러나 현실은 이런 생각을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더욱 더 외면할 뿐 아니라 아예 무시합니다. 허지만 그렇게 해서 당장에 개인의 이익을 성취했다는 사람들의 말로가 어떤지 를 역사의 심판에서 너무 많이 봤으면서도 말입니다.

영혼은 개인에게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도 있고, 정부에도 있고 세계에도 있습니다. 영 혼을 상실하면, 개인도 공동체도 물질만 추구하고 그것을 더 많이 늘리는 데만 집중합니다. 급기 야 물신주의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힘겨루기도, 권력에 혈안이 되거나 집착하는 것도 목적이 결 코 다르지 않습니다. 대통령에서 평범함 시민이 이르기까지,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가를 다시 물 어야 합니다. 입으로는 좋은 말 다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번영과 경제발전, 통일과 화해, 평화 의 정의, 사랑과 서로 돕는 일, 등등 하기 좋은 말은 다 쏟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말과 의식의 수준이 얼마만큼 조화되고 있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의 의식과 행동이 일치를 이루고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돈을 쫒는 기계이거나, 권력을 쫒는 기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성취하느냐에 앞 서서 인격을 성취하고, 인간을 성취하는 것을 가장 우선적으로 바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네 영혼(Psyche)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말씀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가를 다시 묻게 하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