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운 목사
(발행인 / 공동체성서연구원장)
온 세계를 경악과 충격 속으로 몰아 넣은 테러에 대응하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동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답답하게 여길 분이 많았을 줄로 압니다. 나도 전 같으면 화가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동기와 원인을 다시 생각하면서 그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신자로서 그리고 목사로서 당연한 것 같지만 실은 이렇게 생각하며 말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달포 전에 에니어그램 영성 수련을 3박4일에 걸쳐 시행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난생 처음 받은 상처'를 이야기하는 시간에 저마다 어릴 적에 받은 상처를 회상하고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보통 때는 하루나 조금 길면 반나절을 더 시간을 써서 틈틈히 그런 이야기를 더 듣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참가자 숫자가 다른 때에 비하여 훨씬 적었지만 상처받은 이야기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진하고 아픔과 괴로움을 함께 나누기가 힘겨울 정도였습니다. 오랜 동안 상담도 하고 영성 수련을 인도하면서 살아온 나에게도 정말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렵지만 잘 참아주고 견디는 참가자들을 생각하면 조마조마하고 안스럽기도 하였지만, 고마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간의 무게는 마지막 날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한 기억보다도, 현재 당하고 있는 아픔과 상처 때문에 차마 이야기를 하기를 괴로워하는 이를 보면서 그야말로 "너의 고통이 나의 고통으로 느껴지는 컴패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시작이었습니다. 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뒷생각"으로 나의 온 실존을 휘감으며 압도하는 진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말하기 어려운 상처를 지니고 살아온 그가 바로 위대한 교사였습니다. 내가 일찍이 만난 어떤 교사보다 나에게 위대한 교사입니다. 내가 공동체성서연구를 하며 영성수련을 하며, 에니어그램 교육을 하기까지 나를 가르쳐 주신 스승들을 결코 폄하하기 위한 뜻이 아닙니다. 그 날 내가 새롭게 만난 위대한 교사는 생각하고 알고 느끼고 경험하며 살아온 지식과 진리가 하나로 통합되고 응축되도록 나를 도와주셨습니다, 내가 발견한 진실은 아주 소박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에니어그램 1번 유형의 성격입니다. '완전주의'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분노를 기피하며 화를 내지 않으려고 고심하며 사는 특징을 지닌 이런 성격은 옳고 그름과 잘잘못을 따지는 데 그야말로 이골이 난 유형입니다. 헌데, 그 날 그 위대한 교사를 발견하고서는 내가 한없이 모자람을 느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면, 그것이 고의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가 어렸을 적에 받은 상처에, 거기에 덧붙여서 평생을 두고 같은 패턴의 상처와 괴로움을 연거푸 당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오는 작용 또는 반작용에 다름 아닌 것임을 깊이 이해하고 동정하게 된 것입니다. "판단하지 말아라. 그 판단으로 너희가 판단을 받을까 두려워하라"는 말씀이 가슴에 꼿힙니다. "죄를 미워하되 죄짓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커다란 반울림이 되어 옵니다. 남의 잘못을 보면서 그 잘못의 근원에 상처가 도사리고 있음을 크게 눈뜨고 보도록 도와주는 그가 바로 나에게는 위대한 교사입니다. 본디 진리를 아는 길은 하나였다고 하는 말을 곱씹어 봅니다. 종교와 철학과 과학과 예술로 그 길이 크게 나뉘어지더니, 현대에 와서는 수도 없이 더 많은 갈래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전문 지식을 붙들고 살다보니 진리로부터는 그만큼 멀어졌는가 봅니다. 그런데 나는 그 날 그를 보면서 그가 괴로워하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동터 오듯이 밝아진 깨달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에니어그램을 현대사회에 처음 전수한 굴지예프의 스승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음을 이해하게 된 연유도 됩니다. 상처입은 그는 나를 가르쳤다는 것을 상상도 못할 것이지만 말하기 조차 괴로운 상처를 끌어안고 끈기있게 살아가는 삶 자체가 위대한 것 또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가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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