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띄우는 말씀 (2001. 12)

사람되어 오시는 예수

김영운 목사
(발행인 / 공동체성서연구원장)


       

어느 덧 12월이 다가오며 크리스마스를 바라보게 됩니다. 성탄절은 종교와 신앙을 넘어서서 온 세계 사람들의 축일로 자리잡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런데 금년 크리스마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명절의 기쁨을 누리기 보다는 슬픔과 아픔을 느낄 이들이 너무 많을 듯 싶어서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아리고 답답해 오는 것을 어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축일이나 명절이 되면 모두가 귀소 본능을 따라 살 듯이 고향으로 가족의 품으로 찾아 듭니다만 남들이 그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찾아갈 고향이 없거나 잃어버렸거나 갈 길이 막힌 이들은 평소보다 더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지난 9월 11일 뉴욕에서 수천 명과 함께 재가 되듯이 사라진 사랑하는 아들, 딸, 애인과 친구, 지인과 동료 등을 졸지에 잃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그가 지금이라도 당장 문을 박차고 들어올 것 같은 생각에 몸을 떨게 될 것입니다.

그 엄청난 테러의 후유증으로 벌어지는 참혹한 전쟁 때문에 죽어가는 수없이 많은 군인들 뿐 아니라 무고한 양민들의 죽음과 난민들의 고통은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차라리 말조차 잃어버립니다.

새천년 들어 맞이하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가 이렇듯이 아픔 속에서 다가옵니다.

"라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울부짖으며, 크게 애곡하는 소리다. 라헬이 자식들을 잃고 우는데, 자식들이 없어졌으므로,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예수가 탄생한 직후에 헤롯이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였다."는 뒤따른 통곡이 들려오는 가운데, 거꾸로 흐르는 시간 속에 예수가 탄생하는 듯 싶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예수의 오심은 섣부른 감상주의나 낭만주의는 커녕 거짓스런 평화주의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아주 냉혹한 진실을 드러낼 뿐입니다. 거짓 평화가 어떻게 판을 치는지 여지없이 드러나게 만듭니다.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 테러와 전쟁과 살인을 버젓이 수행하는 이들의 거짓을 온 세상에 밝힙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이른바 '알라'의 이름으로 정의를 부르짖으며 끔찍한 테러를 자행하고 '죠지 부시'는 '야훼'의 이름으로 '빈 라덴'을 정의(법정) 앞으로 끌어낸다는 명목으로 부고한 민간인 특히 어린이들을 떼죽음으로 몰고 갈 것을 알면서도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성전'을 끌어들이면서 말입니다.

예수의 오심을 죽임이 아니라 살림을 위한 것임을 온 인류가 다시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가 사람되어 오심은 바로 '삶'을 '앎'과 하나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내가 '살' 뜻과 남을 '살리려는' 결단을 '앎'으로써 어우러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가 사람되어 오시는 뜻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되게 하는 것이지 내 사람 살리기 위하여 남의 사람 죽이는 것도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편 사람 살리기 위해 다른 편 사람 죽이는 것도 사람의 일이 못 됩니다. '우리'가 믿는 '야훼'도 유일신이라 합니다. '그들'이 믿는 '알라'도 유일신이라 합니다.

그런데 예부터 그 유일신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는 것을 두고, '사람되어 오시는 예수'는 오늘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용서하라.'
'화해하라.'
'하나가 되어라.'

예수의 이런 말씀을 온 몸으로 살려는 의지와 결단이 없이 유일신을 믿는다는 것이 거짓임을 모두가 시인하고 자각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우리의 믿음이 거짓일뿐더러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 곧, 존재(Being)와 '앎(Knowi- ng)', 곧 지식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속에서 사람의 참 모습과 뜻이 있음을 재발견합니다. 예수가 사람되어 오시는 뜻을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가슴깊이 끌어안으며, 우리 모두 예수와 함께 그야말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성탄절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