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띄우는 말씀 (2002. 1)

무조건적인 사랑을

김영운 목사
(발행인 / 공동체성서연구원장)


       

새 날이 밝아 옵니다. 전쟁과 테러의 악몽으로부터 깨어나야 할 새 해가 열립니다. 인류사회를 돌아보고 새 천년을 내다보며 사람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과 더불어 그 동안 쌓아온 지식과 다듬어 온 존재 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낼 분별과 결단을 새롭게 할 때입니다. 모두가 인간 개발의 균형과 조화를 위하여 마음을 다지고 나설 때입니다. 인간 회복을 새롭게 선포하며 서로 사랑하기를 작정하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지만, 특히 우리 한겨레는 무조건적 사랑을 드러낼 때, 가장 큰 힘이 나타납니다. 사심 없이 겨레를 생각하고 나라를 걱정하며 나설 때 '우리'는 용감성과 독창성과 지속성을 살립니다. 은근과 끈기를 자랑하며 서로 보듬어 주며 너그러이 관용합니다. 함께 풀어야 할 문제가 분명하고 더불어 이룩해야 할 목표가 확실할 때, 그 누구보다도 '우리'는 과단성있게 추진하며 그야말로 탱크처럼 밀고 나갑니다.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은 몇 가지 일 만 떠올려도 이런 모습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6ㆍ10항쟁,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 게임, 그리고 97 IMF 위기 때 등등. 일상적인 무질서와 무기력을 어느 날 갑자기 하루 아침에 털어내고 나서는 일이나, 남녀노소가 앞다투어 금모으기에 나서던 감격스러운 장면을, 평소의 나태와 자기비하를 순식간에 날려 버리고 갈등을 기피하거나 두려워하던 성향이 언제 있었던가 싶게 과단성이 생깁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조건적 사랑이 솟구치는 모습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거야말로 우리가 지니고 있는 베스트 에너지입니다. 이기주의에 사로잡히면 곧 잘 드러내는 자기비하와 나태의 격정을 전향시켜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창조적 열정을 내뿜게 하기만 하면 누구도 쫓아올 수 없고 흉내낼 수 없는 저력입니다. 제각기 '나' 밖에 모르는 사람들처럼 뛸 때는 세계가 걱정할 만한 사태를 빚기도 하지만 이렇게 '우리'를 생각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드러내기로 말하면 세계 언론이 감탄하며 찬사를 보낼 멋진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난 세기를, 특히 20세기 후반을 지내오면서 미국적인 성향을 뒤쫓으며 온 세계 사람들이 그렇듯이 우리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성공주의적 강박충동으로 달려온 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극심한 이기주의와 물질주의 그리고 무한경쟁의 늪에서 허우적 대다가 자기기만에서부터 남을 속이는 거짓이 일상화되다시피 하였습니다. 이른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이 너무 강해졌던 것 또한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앞장서 있다는 정치 지도자들이 제일 크게 그린 듯 싶습니다. 물론 시민들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멋진 이야기로, 자랑스러운 이야기로 바꾸기 시작한 사람들은 언제나 소박한 시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무조건적인 사랑을 드러낼 때가 되었기에 말입니다. 2001년 월드컵 축구 대회가 이 땅에서 열리는 해입니다. 우리 단독으로가 아니라 일본과 공동 주최로 열리는 축구대회를 바라봅니다. 그렇지 않아도 역대의 다른 대회의 주최측과 비교될 일이지만 동시에 주최측이 되는 일본과는 더욱 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룰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때에, 우리의 창조적 열정을 살리기만 하면, 우리는 대범하게 사심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온 세계 앞에 여봐란 듯이 드러낼 수 있습니다.

지난 날처럼 반짝 효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특유의 은근과 끈기를 살려서 지속적으로 우리의 열정을 끌어올리며 온 세계 사람들이 참된 평화를 여기서 체험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세계 평화"를 이룩하자는 결단이 새롭게, 멋지게 이루어지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