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운 목사
(발행인 / 공동체성서연구원장)
요즘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대선 정국은 연말까지 꽤나 길게 이어질 것입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라는 말이 별로 실감나지 않는 분위기여서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이른바 국민 경선에 나선 후보들 사이의 공방은 마치 제로섬 게임을 보는 듯하여 짜증이 나기까지 한다고들 합니다. 더욱이 보혁논쟁이 인신 공격성의 비난으로까지 격화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과 TV 토론에 등장하는 그들의 여유 없는 표정도 마치 지난 시대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떨칠 수가 없습니다. 사실상 선거가 잔치가 될 수 있다는 말이 그리 간단하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간단 소박해야 할 것이 간단하지 못한 만큼은 어려운 것입니다. 누가 돼 도 나라를 융성하게, 사회를 건강하게, 국민을 활기차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는 것만이 중요한 일입니다. 경선에서나 결선에서 이긴 사람도 이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일이요, 진 사람도 역시 같은 일을 위하여 당선자와 협력하여 있는 힘을 다 기울이게 되는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그야말로 선거는 잔치가 되는 법입니다. 이런 당연 논리가 외면당하고, 그렇게도 간단한 뜻이 소홀히 되는 까닭은 따지고 보면 하나입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크고 작은 일 앞에서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서 있는가?”를 묻는 간단한 물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그렇거니와 더욱이 큰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전통과 혁신은 둘 다 필요한 것입니다. 과거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과거를 어떻게 살았느냐가 현재에 나타나고, 현재를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전통과 혁신은 떼어놓을 수 없는 긴장 관계 속에서 봐야 할 것입니다. 전통을 무시하는 혁신은 난세와 무질서를 낳고, 혁신을 외면하는 전통은 미라처럼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중세 12～13세기부터 발전되어온 유대신비주의의 핵심인 카발라(Kabbalah)를 그런 뜻에서 주목합니다. 카발라 영성운동을 한 사람들은 전통을 지키는 일에 헌신적이었기에 누구에게서도 쉽사리 급진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인간 영혼의 심층부를 터치하였기 때문입니다. 의미의 정치, 희망의 정치를 주창하는 이들은 그들의 사상적 배경을 보면 이와 같은 카발라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정치는 전통적으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목적으로 삼아 왔습니다. 정치 초년생이라도 부정할 수 없는 뜻이 여기 있습니다. 더욱이 대통령을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이 근본을 어떻게 살릴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춰서 심혈을 기울여야 마땅한 일이고, 여기에 전통이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 급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어떻게 혁신이 가능할까를 깊이 고민하며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과 혁신, 둘 중에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우는 성향이 있다 할지라도 대의를 위하여 전통과 혁신 사이에 필요한 만큼의 긴장도 유지하면서 균형과 조화를 절묘하게 이끌어내는 능력을 내보여야, 큰일을 감히 꿈꿀 만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오늘 국민의 의식 수준에 비추어 보면 대통령이 될 사람 뿐 아니라 이른바 국민적 지도자라 할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국민을 하늘처럼 두려워해야 합니다. 민의를 수렴한다든지, 국민을 섬기겠다든지,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든지 하는 아름다운 말들을 비롯하여 달콤한 공약을 수없이 내놓고 나서, 당선되고 나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거나, 낙선하고 나서는 헌신짝처럼 버리는 정치인들을 그동안 너무 많이 봐 왔습니다.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들은 모두 지난 대선 정국으로 마감했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은 훌륭한 일을 바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돼도 “국태민안”을 이루는 패러다임의 전통과 “국민을 받들어 섬기는”, 그리고 국가경영을 합리적이며 민주적으로 하려는 패러다임의 혁신 사이에 진정한 균형과 조화를 절묘하게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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