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띄우는 말씀 (2003. 2)

‘멸사봉공 하겠습니다.’

김영운 목사
(발행인 / 공동체성서연구원장)


       

새 천년을 온 세계가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던 3년 전에 비하여 다른 감회로 우리는 이제 시대의 한 획을 긋게 됩니다. 노무현 당선자가 대통령으로 새롭게 취임하여 새 정부가 들어섬은, 어느 때 새 대통령을 맞는 경우보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먼저 ‘낡은 정치 청산’, ‘새로운 대한민국’ 같은 말이 단순히 대선용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바라는 바일진대, 무게와 힘을 실어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권위주의를 정치에서 시작하여 사회 각 분야에서 털어 내야 할 것입니다. ‘법과 정의가 서는 나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일하는 사람이 땀의 대가를 정당하게 얻는 사회’, ‘시스템이 바르게 운영되는 사회’ 등등으로 표현되는 건강한 사회, 신선한 정치로 가자면, 우리 모두가 다부지게 한 획을 그어야 합니다. 그어도 아주 크게 그어야 합니다.

새 시대, 새 역사를 펼치면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레토릭(수사)만 화려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로직(논리) 또한 분명히 서고 레토릭과 조화되어야 합니다. 명실상부하게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2002년 12월 20일 아침, 국립 현충원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참배를 마치고 서명대에서 보여준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상징적 의미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한글 세대를 대표하는 대통령답게 전임자들과는 달리 한글로 서명하였습니다. ‘멸사봉공’ 넉자를 썼을 때, 진부한 구호 같은 인상을 받는 순간, 거기에 다섯 글자가 덧붙여졌습니다. ‘하겠습니다.’ 빈말로 툭 던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서명자가 스스로 의지와 힘을 실어 그 뜻을 실행하겠다는 결의를 내비치는 의미와 의의로 느껴지는 듯 하였습니다. 이것은 감상적으로 또는 나이브하게 생각하는 희망사항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번에도 구호로 그치고 빈말로 그친다면, 정말 안 되겠기에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합니다.

대통령이 ‘멸사봉공 하겠습니다.’ 하고 스스로 다지고 천명하며 살 때에, 각료를 비롯하여 국민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는, 스스로 오만과 독선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국민이 볼 때 대통령이 멸사봉공은 말로만 그치고, 권력의 집중화가 절대화 쪽으로 기울면서 ‘제왕적 대통령’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 민심은 등을 돌리거나 인기가 곤두박질치는 결과로 가게 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잡은 사람은 힘을 과시하거나 그 힘으로 백성을 내리누르려는 속성을 늘 드러냅니다. 예수는 권력 정치가 늘 절대화하는 것을 경계하며 상대화시켰습니다. 권력을 상대화시키려면 근본적인 의식의 전환이 요청됨을 가르칩니다. 코페루니쿠스적인 전환이 요청됩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의식의 전환은 새로운 실천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멸사봉공’이 무엇이겠습니까? 사사로운 야심이나 목적을 뒤로 물리고 공공의 이익과 공동선을 봉사한다는 것이 아닙니까?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공동선이란 말도 제법 들어왔습니다.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겠노라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좋은 말일수록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허위성으로 드러나고, 그만큼 역겨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곧 기만과 과잉충동 반응이나 행동으로 나타나기 십상입니다.

이제 ‘새로운 대한민국’을 비전으로 삼고 함께 나아가야 할 우리 모두가 취임하는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새 정부와 더불어 ‘멸사봉공 하겠습니다.’하고 역사와 세계 앞에 천명합니다. 섬김의 궁극은 십자가의 희생임을 마음에 새기며 우리 모두 한 획을 크게 그읍시다. 국민이 대통령 되게 하고, 주인 되게 하겠다는 새 대통령의 뜻을 살리도록 온 국민이 ‘멸사봉공 할’ 때, 우리 모두 손에 손잡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방에 빛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