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의 뜨락 (2000. 2)
잃어버린 아름다운 것을 찾아서
정화신
두려움과 기대로 바라본 새 천년, 새해, 새날, 혹 천년의 경계를 넘는 순간 '죄악이 관영한 세상' 이 홀연히 사라지고 순백의 세상이 나타나기라도 하는 것일까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경계를 넘는 일은 세상에 휘둘리며 분주하던 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지금 서있는 자리'를 보 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기회'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돌아보아 찾은 것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 돌아보았을 때는 참담한 모습뿐 어디에 도 구원이 없어 보였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우리가 잃어간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았습니다. 사랑,용서,회개,은혜,감사,겸손,정직,평화...세어 가는 동안, 새 천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발견하고 뒤틀려 놓은 것들을 원래대로 회복해나가는 일 뿐이라는 것을 알았 습니다.
그래서일 것입니다.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성한데 없는 우리를 위해 세상에 사랑으로 오신 하 나님, 아기예수를 만나 엎드려 울고 싶었습니다. 2천년 전 베들레헴의 작은 말구유로,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평화'이던 그 새벽으로 가서 무릎 꿇고 싶었습니다. 생명을 건 결단으로 순종 하던 여인 마리아와 의로운 남자 요셉, 별 빛 따라 먼길을 온 동방박사들과 그 새벽에 깨어있던 목자들, 그들과 함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가는 천년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깨어 있던 그 시간에 '은혜와 평강'을 바로 찾았는지는 모르겠 습니다만, 우리가 새 천년으로 가져가야 할 것은 필립 얀시의 말처럼 바로 그 '놀라우신 은혜의 손잡이를 잡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하나의 발견은 공동체 성서 연구시간을 통해서였습니다. 이 시간의 특별한 기쁨은 말씀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고백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이어지면서, 상승과 확산을 거듭하 며 깨달음에 이르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강림절 둘째 주,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 고 그 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벧후3:11-12)'라는 본문의 말씀을 나누는 중이었습 니다. 우리가 살아내는 시간은 언제나 하루, '지금 여기 있는 오늘이라는 시간'이라는 것이 왜 그 렇게 새삼스러웠는지요. 우리가 얼마나 자주 '부재중인 오늘'을 살고 있는가 놀랐습니다. 그리고 '매일의 완전연소' '거룩한 하루살이'의 고리들이 이어진다면, 적극적인 기다림으로 사는 오늘의 삶이 바로 은혜 충만한 하나님의 시간을 사는 것임을 또 한 번 알았지요.
바로 그 시간, 골든벨 퀴즈라는 TV프로를 본 친구를 통해 아름다운 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웃끼리 나누기 위해 만든 음식'의 순 우리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바지'였 습니다. 이바지라니요. 자녀 결혼 때 바리바리 싸서 사돈집에 보내는 음식으로 알고 있는 말 아닌 가요. '단어도 세월이 지나면 오래된 고기처럼 상하거나 변질된다고'하는데, 이바지 역시 뜻이 변 질되고 축소되었었던가 봅니다. 나누는 기쁨보다는 가깝고도 먼 이웃을 위해 갖추어야 할 형식으 로 남았으니 말입니다. 친구의 설명을 들으면서, 찾아낸 아름다운 우리말 하나를 잘 닦아서 나눠 야 할 것 같았습니다. 세상의 축제로 변질된 크리스마스를 되찾듯이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원심 력이 있는 이 말에서 확산된 것이 '사회나 국가에 이바지하는'것이네요. 이바지라고 꼭 거창할 필 요는 없는 것 아닌가요. 주어진 하루, 내 몫의 오늘을 기쁨으로 열고 감사로 닫는 사람들 속에 이 미 들어있는 '나눔의 마음'이 바로 이바지가 아닌가요.
정화신(수필가이며 새문안교회 집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