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의 뜨락

말씀과 삶의 뜨락 (2000. 12)

할머니의 회갑잔치

강명순 목사

예은 신나는 집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부모의 가난으로, 학교에서는 냄새나고 지저분 한 꼴지로, 동네에서는 사고뭉치로 이미 낙인도장이 콱 찍힌 아이들이었다.

나와 윤명선 전도사님이 제일 먼저 이 아이들에게 전한 것은 '자신감을 가지자' 였다. 그 리고 우리는 거의 매일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육신의 아버지로 또 우리를 아들 딸로 사랑하신다는 것도 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 멀리 계셨다. 나는 날마다 하나님 의 자비하신 손길을 느끼는데 아이들은 조금 감이 멀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신나는집 모 든 식구-교사, 목회자, 자원봉사자, 공공근로자와 그 가족들-를 한 울타리 가족으로 호칭하 게 했다. 원장인 나는 엄마, 내 남편은 아빠, 나보다 12살 위인 윤전도사님은 할머니, 그리고 고모, 이모, 삼촌등.... 무려 명호와 진아는 엄마가 12명에 아빠 3명이나 되었다. 명호가 하는 말은 "나는 진짜 엄마가 나 어렸을 때 일찍 떠나갔기 때문에 엄마가 더 많이 필요해!"였다. 그래서 명호는 결혼안한 사회복지사와 고2 누나보고도 마음 내키면 엄마라고 불렀다. 우리 집 큰 가족 식구는 모두 30명이 되었고 나도 언제나 아이들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때때로 말썽장이들이 도둑질이며 돈타령, 담배타령으로 고민스럽기도 했지만 정말로 배 안 아프고 자식을 20명이 넘도록 얻어서 기분이 참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2년이 지나자 아이들이 너 무 기가 살아서 천방지축 뒤죽박죽 질서도 예의도 점점 없어졌다.

그래서 윤할머니 전도사 님(이하 할머니라고 하겠다)과 의논하여 즐거운 사건을 만들어 보았다. 그 이벤트의 이름을 명한다면 윤명선할머니 회갑잔치였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즐겁게 준비를 했다. 초대장을 아이들이 만들고, 할머니에게 선물로 드릴 십자수 쿠숀, 십자수로 만든 시계, 스킬로 만든 전화받침 2개, 할머니가 출연한 사진모음액자, 그리고 아이들이 글을 쓰고 색종이를 잘라서 고리를 만들어 예쁘게 집을 장식하기도 하였다.

또 초등학교 저학년은 '밀양 아리랑' 노래가사에 주님의 삶과 윤할머니의 삶을 이어서 패 러디한 단체 무용노래공연을, 그리고 고학년과 중학생은 부채춤을 준비하였다.

「회갑잔치」초청범위는 아이들의 부모님과 할머니의 자녀들과 친척 그리고 부스러기선교 회 식구들과 결식어른들로 정하였다. 잔치상을 꾸미는 것은 교사들이 하지만 손님접대용 음 식은 평소에 갈고 닦은 요리솜씨가 있는 아이들이 만들기도 했다. 호박전, 동태전과 고기볶 음과 깻잎전, 닭강정 등등을 아이들이 만들었다. 평소 그라탕이나 탕수육, 스파게티정도는 자기들이 만들 수 있어서 쉽게 만들었다.

"풍성한 가을에 풍성한 사랑을 가지고 가세요"라는 초대장과 "바로 이분의 회갑잔치에 안 오면 후회할 걸"이라는 사진모음 초대장 "할머니 사랑해요!"와 시끌벅적한 잔치날이 되기까 지 아이들은 바쁘게 나날을 보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잔치날 할머니께 손자 손녀들 이 절을 하는데 그 예의 범절을 몰라서 청소년 문화원의 예절교사를 모시고 배우는 것이었 다. 큰절, 평절, 남자절, 여자절과 한복 입는법, 헌수하는 것과 회갑잔치 순서등을 배우는 아 이들의 진지한 모습은 한폭의 수채화 같이 아름다웠다.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선물도 준비해 주셨다. 비록 피는 한 방울도 안 섞이었지만 엄연한 손자 손녀들이어서, 그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양말과 속옷을 남녀와 연령을 구분하여 준비해 주셨다. 회갑잔치 하루전 교사 들은 고민했다. 회갑날이면 모두 한복 한 벌씩 얻어 입는데 30명의 아이들은 너무 많았다. 십자수를 놓거나 스킬을 하고 밤늦도록 부채춤과 무용연습을 하는 예쁜 모습에 감동받고 안 쓰럽기도 하여 생활 한복을 거금을 들여 사 입히기로 하였다. 그 긴 망설임은 끝났다. 아이 들은 새 한복을 입고 입이 찢어질 정도로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좋다면 좋은 거였다.

원래 회갑잔치를 계획한 목적은 가정의 울타리가 파괴된 아이들이 전혀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라기 때문에 가정의 따뜻함과 전통과 예절을 훈습(연기가 몸에 배듯이 익혀지는 습관)을 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고집스럽게 회갑잔치의 원형모델을 재 현해 내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함께 노력하여 그 목적을 200% 달성했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나타나지 않 지만 아이들이 쓴 글을 읽어보면 그 흥분된 순간들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가족체계-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아버지라 부르도록 허락해 주시고 불러주시는 그 큰사랑이 눈물겹도록 감사하고 신나는 집이 한가족 울타리로 맺어준 그 인연이 더욱 감사한 하루였다.

* 강명순 목사 (예은 신나는 집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