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의 뜨락 (2001. 12)
옛다! 선물이다!
윤세나
이진영은 나의 이모의 아들, 나와 동갑내기인 사촌동생(?)이다. 나와 6개월의 차이로 늦게 태어난 그는 꼬박 나를 '누나'라 불렀던 어린 시절과는 달리 이젠 거의 친구로 맘먹고 호칭도 대충 부르고, 대충 넘기며 살아간다. 우리는 어릴 적 같은 교회 주일학교에서 자랐고, 같은 중학교를 다녀서 거의 동창의 공감대와 사촌의 영역을 함께 지니며, 아주 친하게 지낸다.
진영이의 형은 진국이 오빠이다. 진국이 오빠는 목사님이 되어 지금은 시골 교회에서 예쁘게 목회를 하고 있다.
작년 12월 25일 그 진영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진영이와 우리는 정말 크게 웃을 일이 있거나 조카들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어김없이 전화를 해서 그 순간의 기쁨을 나누며 살기 때문에 나는 기대에 찬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진영이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내 눈엔 눈물이 핑그르 돌았다.
12월 24일, 진영이는 아버지와 교회에서 성탄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와서 쉬고 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어디 좀 가자면서 차 운전을 부탁하시더라는 것이다. 평소에 다른 사람에게 운전을 부탁하신 적이 없어 조금 의아해 하는 진영에게 아버지는 형 진국목사님이 목회를 하고 있는 그 시골교회에 가자고 하셨다는 것이다.
진영이는 '성탄 전 날이니까 그냥 들리시려고 하시는 것이겠지, 피곤하신가?' 하는 생각에 운전대를 잡았는데 아버지는 또 진영이 옆인 앞자리에 앉지 않으시고, 뒷자리에 무언가를 잔뜩 싣고 앉으시더란다.
30분쯤 지났을까? 진영이 아버지는 뒷자리에 앉아 부시럭 부시럭 소리를 내시며 무언가를 하시기 시작하셨단다. 별 생각없이 운전을 하던 진영이가 얼마쯤 달리다 어느 순간 백밀러로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을 때!
항상 무뚝뚝하고 말이 없으신 그 아버지, 뒷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하시던 그 아버지의 얼굴엔 산타의 하얀 수염이 붙여져 있었고 머리엔 빨간 산타 모자가 씌워져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시골 마을의 작은 교회의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가 끝난 후, 아이들의 캐롤 소리를 가르며 교회 뒷문을 활짝 열고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외치는 이홍균 산타 할아버지.
교회 모든 어린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에 넘쳐, 그야말로 뒤집어졌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홍균 산타 할아버지가 등장한 그 순간, 교회 어린이들과 목사님인 진국이 오빠의 기쁨의 단계는 완전하게 일치하지 않았을까 싶다.
진영이와의 전화를 끊고 나는 생각했다. '이건 분명 소박하게 서로 도우면서, 땅과 어울려 살아가며,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영혼을 열고 사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옛다! 선물이다!" 하시며 이홍균 산타 할아버지를 보내어 아기예수의 탄생의 기쁨을 한층 더 하게 하신 거다'
이홍균 산타할아버지가 어린이들에게 거의 선물을 나누어 주었을 무렵, 교회 한 구석에서 할아버지를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던 이찬수(이진국 목사님의 아들)가 아주 조심스레 할아버지의 곁에 가서 귀에다 대고 조용히 한마디했다고 한다.
"근데, 산타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맞죠?"
아!! 세상은 아직은, 그래도 아직은 감동의 물결이다.
* 윤 세 나 (공동체 성서연구원 간사 / ssenyoon @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