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의 뜨락 (2003.
4)
봄맞이 채비를 하는 겨울 山의 나목들을 바라보며
이 상 희
아직은 쌀쌀함이 묻어나는
봄바람 부는 오후에
등산로를 따라 모락산에 오른다.
저만치 산자락에 걸려있는
햇살을 등지고
낙엽을 밟으며 산길을 간다.
오가는 산행객들에 의해
많이 짓이겨진 낙엽들 위로
바람결에 부딪치며 계속 떨어져 내리는
마른 잎사귀들.
겨우내 나목들 자신을 흔들었던
찬바람과 폭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고 있었던,
자신과 함께 겨울을 견딘 제 몸의 일부를
이제 마지막 한 잎까지
아무 미련 없이 벗어버리고
그렇게 떨구어진 낙엽들은
뿌리를 덮어주고 거름이 되어주고….
저 나목들은 내일이 되면,
봄이 오면 이제 저 나목들은
파릇파릇한 새 옷을 입을 것이다.
아침에 묵상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지금 이 때를 분별하라….
빛의 갑옷을 입으라….
주 예수 그리스도로 무장하라.’
나 자신이 빛이 갑옷을 입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무장하기 위해
지금 이 때에 내가 할 일은
마지막 잎새들을 떨구어 내는
저 나목들처럼,
여러 사건들과 환경 속에서
조작되고 길들여진
나의 겉 사람의 모습들을
나의 참 자아인양 여기며
내려놓길, 떨어내길 거부했던
그런 나의 겉모습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 겉 사람의 모습이 거름이 되어,
디딤돌이 되어 나의 본래 된 자아가
이제 드러나지고,
기운을 내고
활짝 열매 맺게 하도록…
이 상 희 / 한국 디아코니아 자매회 언님, 15기 영성수련에서 쓴 자연 묵상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