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06

 

 

 

 

 

 

 

 

 

 

 

 

  말씀과 삶의 뜨락

 

 

 

 

 

 

 

 

 

 

 

 

 


글쓴이

:

조 승




고등학교 재학 중
choseung210@hanmail.net






 

숲을 배운다.
-겨울나무 아저씨에게-

조 승

몇 십 번, 혹은 몇 백 번, 그저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버린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황폐한 풍요 속에 젖어 버린 나머지, 이젠 이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요? 아니, 어쩌면 아직 온 세상을 덮고 있는 겨울의 한기가, 이 모든 것을 더욱 낯설게 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이 곳, 왠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그리운 모습- 하지만, 모든 것이 낮설게 느껴집니다. ‘숲’, 자연의 속삭임이 메아리치는 그 곳에서 빛 바랜 사진첩을 꺼내들며 한숨만 푹푹 쉬는 나무아저씨. 쩍쩍 갈라진 아저씨의 늙은 몸뚱아리가 무상한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는 걸까요? 한숨과 회한의 감정만이 가득한 곳, 시냇물조차 얼어버린 이 메마른 대지가 낯설지만 왠지 낮설지 않은 것은, 이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오묘한 애상감 때문일까요?
음- 잠깐 홀로 서 있는 저 아저씨에게 말을 한번 걸어볼까요?
나무 아저씨, 잠시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저씨에게도 씨앗 한 톨이던 시절이 있으셨죠? 꿈 많은 새싹이던 시절, 푸른 하늘을 동경했던 시절, 다시 돋아나는 작은 새싹을 보며 행복의 충만함을 느끼셨던 그 시절들이 당신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입니까? 지금의 당신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지 않나요? 지금의 당신은 오히려 추악할 정도이고, 너무나도 초라한 지금의 모습은 그 때의 당신의 모습조차 상상하기 힘든데, 만약 당신에게도 이 모든 것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한 시절이 있으셨다면, 모든 것이 달라진 지금, 그 시절은 당신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습니까?
저에게 있어서 그 시절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것, 빼앗길 수 없는 것, 지금의 제 모습을 비추기에는 과분할 정도의 존재입니다.
저는, 두 번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없는 건가요? 그러길 원해요. 그렇다면 지금 제 가슴을 가득히 채우고 있는 커다란 공허함을 모두 메꾸어 버릴 수 있을테니까요. 만약 제가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니 주어지길 간절히 원하는게 아닙니다. 피하는 것도 아니구요. 그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지금의 제 모습을 견디기란 정말 힘든 일이니까요.
음- 하지만 저와는 반대로, 아니 당신을 애처롭게 생각했던 저의 생각과는 다르게, 당신에겐 이상하게 평온함마저 느껴집니다. 왠지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싶은 듯해요.
‘나에게 있어서의 그 시절은, 나의 일생을 통틀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소. 어쩌면 초라하게 변해버린 지금의 내 모습과는 비교도 되지 못했을 시절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내가 이 모든 괴로운 슬픔을 견뎌내고 평안한 마음으로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은, 이 다음에 찾아올 찬란한 봄의 제전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거니와 그 축제의 달콤한 꿀맛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오.’ 라구요.
슬슬 이 쓸쓸한 터전에 은은한 녹색의 향기가 풍기는 걸 보니, 아저씨가 바라던 그 축제의 도래가 멀지 않은 듯합니다.
어쩌면 저 역시 아저씨처럼, 슬픔을 게워내고 구멍뚫린 마음을 다시금 채울 수 있는 그러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요?
만약 더 이상 혼자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옛 기억에 집착하지 않고, 제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다면, 다시 한번 아픔을 곱씹고 일어나고 싶습니다. 더 이상 옛 기억으로 저를 속이고 싶진 않아요.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한 발, 한 발, 힘든 발을 내디며 슬픔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듯해요.
어쩌면, 저는 녹색의 축제가 벌어지는 생기 넘치는 숲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에 스며드는 따스한 어둠의 빛살과 함께, 나무아저씨와 함께 보냈던 소중한 시간들에 작별을 고하고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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