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교훈
손교훈
사무실 내 자리 한쪽에는 어느 여집사님이 단장해 주신 이름 모를 수반꽃이 활짝 피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또 다른 한 쪽에는 며칠 전 내가 화원에서 사다놓은 화분에, 수선화가 곧 피어날 것
만 같은 충만함으로 솟아오르고 있다. 내 눈은 몇 시간 전부터 수선화에게 집중되어 있다.
이제 곧 일어나야 할 시간. 나 없는 사이 피어버리고 말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그러면서
생각한다. '한 밤중에 교회당에 나와 봐야지'.
수반에 꽂혀 있는 이름 모를 꽃은 얼마나 화려한지 모른다. 그리고 집사님의 정성은 얼마나 귀
한 것인가? 아! 그러나 이 이름 모를 수반꽃은 내게 한숨을 자아내게 하지는 않는다. 내게 기다림
을 주지도 않는다.
그에게서는 화분 수선화에게 있는 '과정'이 없고, 화려한 결과만 있다. 끝내 주
는 절정만 있다. 과정이 있다면 시들어 가는 과정일 것이다.
결국 두 꽃은 내게 스테레오로 들려준다. "아름다운 꽃일수록 일찍 시들어가나니, 끊임없이 새롭게 피어나는 '과정의 사람'이어라."
요즈음 이 '과정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니 나는 행복하다. 지역의 몇 개
교단의 목사님들이 많은 분은 아니지만 함께 모여 말씀을 중심으로 서로의 생각과 고민들을 나눈
다. 지금은 그야말로 그 어떤 거창한 슬로건도 없고, 대단한 일들도 없다. 그러나 한 송이 아름다
운 목회의 꽃을 피우기 위해 밤새 울며 새벽을 기다리는 '소쩍새'들은 있다.
지금 번쩍번쩍 광나
고 폼 나는 일은 없어도, 오늘 하루도 뜨거운 예수의 심장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의 사
람들'이 있다. 이 분들과의 만남은 그 외양은 비록 조촐한 것이지만 내 한 주간의 어떤 모임보다
도 소중한 것이다. 쉽게 희미해져 가는 내 목회의 중심을 "다시 바라보고 다시 일으켜 세우라"시
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거룩한 시간이다.
함께 모이는 '과정의 사람들'은 또한 '대화의 사람들'이다. 언어, 생각, 그 삶의 배경이 어느 한 분도 같은 분이 없지만, 그러나 그 '다름'이 나 자신에겐 새 힘과 지혜를 주고, 크신 하나님 앞에 더욱 자세를 낮추게 한다. 더군다나 몇 주 전 그 사건(그것은 내게 진정 사건이었다) 이후로는 더 그렇다.
가족들과 함께 몇 번 간 바 있던 청도 운문사 입구에 도착한 나는 주차요원 아저씨에게 말했
다.
"아저씨 절하고 비슷한데서 온사람인데 주차요금 받습니까?" 아저씨 왈, "어디서 오셨는데요?
신도증 있으면 그냥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신도증은 없지만 정말 비슷한데서 왔습니다." "아
그게 어디인데요?"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왔습니다." 이야기가 이쯤 되자 주차요원 아저씨 어
이가 없다는 듯, "이 양반이.... 아, 들어가기 싫으면 어서 차 돌려나가세요. 어서요." 이 아저씨
뒤로 물러가며 혼자 중얼거리는데, "교회(개신교)가 비슷하긴 뭐가 비슷해. 성당이 비슷하지..."
아! 분명 내 귀에 그렇게 들렸다. 나는 차를 다시 그 아저씨에게로 갖다 붙였다. "아저씨 지금
성당이 절하고 비슷하다고 하셨습니까?" "그래요. 성당이 우리랑 같지, 교회가 우리랑 뭐가 같아
요? 여기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오시면 주차요금 안 받고 들여 보내드립니다. 어서 돌아가세요."
가슴은 떨리고 머리는 하얗게 비어오고, 나는 거기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믿음이 굳세어질수록 이해와 대화의 폭이 더욱 넓어지고, 일치와 평화의 주역이 되는 (개신)교회 를 꿈꾸며, 이 저녁 나는 '과정의 사람들'과의 소중한 대화의 자리로 간다.
* 손교훈 목사는 대구 삼덕교회에서 사역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