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기
한 오륙년전쯤에 공동체성서연구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성나자로 마을에서 있었 던 공동체성서연구원의 영성수련회에 어렵사리 한 주간을 내어 참석했었습니다. 나로서는 목회 사오년의 생활에 적잖은 갈등을 겪던 때였습니다. 나름대로 확신했던 목회에 대한 이런저런 신념 들이 하나둘씩 초라하게 허물어져만 가는데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 영성수련회 에서 나는 나의 몸과 마음, 삶과 의식, 그리고 너와 나 사이에 스스로 쌓아온 장벽이 얼마나 크고 견고한가를 처음으로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공동체란 말을 화두로 삼고 이럭저럭 살아왔습니다.
몸은 여기에 있는데 저 만큼 앞서있는 생각에 의식을 두고 사니, 몸으로 사는 즐거움을 언제나 누리지 못하는 것이 저 자신이었습니다. 많은 일을 하면서도 만족함이 따르지 않아 기쁨이 없으 니 그 일 또한 오래갈리 만무였습니다. 그런 나에게 의식의 중심을 몸에 두라고, 그렇게 성서를 보며, 기도하고, 생활하라고 가르쳐준 그 영성수련회. 정말 큰 깨달음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둘이 아닌 것을 둘이라 하고, 길이 아닌 것을 길이라 헤메였으니 그 삶이 피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입니다. 이제는 많이 회개하였습니다. 목사로서 10년째 담당하고 있는 농촌교회에서 재밌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작은 농촌교회입니다. 교회가 작은 덕에 나로서는 일에 자유로움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마당을 쓸고, 꽃밭도 가꾸고, 예배당 수리도 하고, 의무감에 쫓길 필요 없이 하 고 싶은 일을 골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농촌 목회를 즐기다 보니 처음에는 서툴기만 했던 망 치질, 톱질, 삽질도 웬만큼 익숙해지고, 요령이 늘다 보니 이제는 일하는 데에 잔잔한 재미도 몸 에 배는 듯 합니다. 그래서 샤워장도 짓고, 차고도 짓고 이것 저것 뚝딱거려 보았습니다. 비로소 몸으로 사는 즐거움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일하는 재미 중에 재미는 뭐니뭐니 해도 흙과 더불어 생명을 돌보는 일, 농사입니다. 작은 씨앗 은 흙에 뭍이기만 하면 스스로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데 몇 수 백배 입니다. 생명세계의 영원한 신비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는 것이 농사입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깨달음이 많습니 다. 영성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로 닿아있는 공동체적 생명의 원리를 깨우치 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먼저 앞세우지 않고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다가간다면 농사만큼 성스러 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목사로서 농사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 사오년 쯤 된 것 같습니다. 4백평에서 출발한 밭농사가 이제는 이럭저럭 천여평 됩니다.
오늘날의 농업이 현대 모든 문명과 마찬가지로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을 파멸시키고 있는지, 돈이 되는 작물 한 두 가지 를 얻기 위해 수많은 생명체들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농약으로 독살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 결과가 정말 두렵기만 합니다. 자신의 생존과 번성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생명체, 그것 이 암세포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사람 몸도 죽지만 암세포 자신도 죽고 맙니다. 이 지구상의 온생명을 생각한다면, 우리 인간이 이 암 같은 존재가 아닌가 두렵습니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 고자 하면 영원히 산다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새롭습니다.
그런 뜻에서 지난 겨울에는 생명농업강좌를 우리 교회에서 열었습니다. 관심 있는 30여명의 농 부들이 모여 함께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생명환경을 걱정하는 농부들이 작은 걸음을 내딛 어, 우렁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만여평의 논에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기로 하였습니다. 요즘의 쌀 농사는 거의 화학농법입니다. 특히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논잡초를 없애기 위해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주성분인 맹독성 제초제를 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더 이상 논은 미 꾸라지나 붕어 우렁이는 물론 보리새우 같은 많은 생명체들이 살수 없는 반생명적 생태환경이 된 지 오래입니다. 물론 이런 환경에서 거두어지는 쌀이 어떨까는 짐작 할만 합니다. 이 우렁이 농법 은 지난해에 저희 교회 구권사님이 논 2천평을 제초제 없이 성공적으로 쌀을 수확하게 된 것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생명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생명농업을 계속해 가리라 다짐합니다.
우렁이 농법은 식물을 먹고 자라는 식용 우렁이를 모내기를 하고 나서 바로 논에 넣어주는 것 입니다. 그래서 논김을 사람대신 매게 해서 맹독성 제초제를 100%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훌륭한 유기농업의 한가지 방법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렁이를 많이 새끼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릅니다. 그래서 지지난 달에는 우렁이 양식장을 지었습니다. 요즘은 우렁이가 알 까는 것을 아 내와 함께 바라보는 것이 큰 낙이 되었습니다. 이 우렁이 가족을 통해 나는 또 올 한해 무엇을 배우게 될지 사뭇 기대가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주인인 동시에 그 자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물 담겨진 논에서 벼가 자라고, 그 포기 사이로 붕어나 미꾸 라지, 물방개, 우렁이, 민물 새우등이 더불어 살아가는 풍요로운 논 풍경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입니다. 한번 구경오세요.
* 정원기 목사 (이천 송라감리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