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봉
며칠 전 선배 한 분이 다녀갔다.
그 선배와의 목회인연은 몇 개의 교회의자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초 선배는 지역 저소
득 가정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꾸미며 교회 의자를 내놓게 되었고 마침 그 무렵 개척준비
를 하던 나는 그 의자를 가지고 예배처를 준비했었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이 목회 초년생
선후배의 마음나누기로 이어졌고 공동체 성서연구를 통해 더욱 돈독해졌다.
깊은 밤, 아내는 모처럼 만든 호박죽을 내 놓았다. 선배는 연신 '맛있다' 면서 소리를 멈 추지 않고 물을 마시듯 후르륵 한 대접을 금새 비웠다.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와 안부를 물 으며 우리는 작은 개척교회를 통해 느끼는 신앙과 현실의 치열한 부딪힘들을 조용히 그러나 결연하게 꺼내 놓았다.
선배는 목회자인 우리가 더 썩어 져야 한다고, 짱아찌처럼, 나를 벗고 장을 담그듯이 말 씀에 푹 젖어 드는 것. 예수의 냄새가 폴폴 나도록, 예수의 맛이 솔솔 배어 나도록, 썩어지 는 길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지 못한 자신이 늘 하나님 앞에 죄스럽다고 고백한다. 선배 가 이렇듯 너무나 본질적인 문제를 강조하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성장을 지향하는 대형교회의 성장논리와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성장경향의 여러 모습들이 마치 목회와 교회의 유일한 기준과 목표인 것처럼 강조되고 있는 현실을 선배는 요즘 주변 에서 피부로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한테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작 은교회와 시골교회의 목회자들은 성장의 성과 없이는 목회자로서의 자질과 영성조차도 의심 받고 아니 조롱(?)받고 있는 현실의 안타까움을 솔직하게 전해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 더 안타까운 것은 힘과 돈의 지배라는 자본의 논리와 업적과 실적위주라는 성공주의의 강제 앞에 대부분의 많은 목회자들이 벗어날 수 없는 올무처럼 스스로 얽매여 있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이다. 정말 열심히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여러 가지 목회의 성공 담과 방법, 기술들을 익히는 동역자들의 열정을 왜 탓하겠는가! 문제는 아무리 '옳다' 해도 '진리'라 해도 성공하고 보여주지 않으면 넋두리요, 푸념에 지나지 않으리라는 결심들이 그 바탕에서 열정을 더 몰아세우는 느낌이 들 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은 너 무나 멀리 있는 듯 보여질 때, 바로 그때 가슴이 아픈 것이다. 남모를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괴로워하며 신앙의 양심과 복음의 진실 앞에 더 이상 침묵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거 기에 있다. 그러니 젊을 때 더욱 분주하게 일어나고 복잡하게 달아나며 폭발하는 자신의 에 너지를 안으로 끌어당겨서 어떻게 영성의 힘을 가다듬을 것인지가 중요하지 아닐까? 이렇듯 고백과 성찰로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될 때면 나는 언제나 처음 공동체 성서연구를 대하던 그 때의 모습을 떠올린다.
목회 선배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 성서연구를 시작하던 첫날, 나는 목회 초년생의 막내로 그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었다. 새로운 교회의 모습과 말씀을 찾아 헤매며 목말라 하던 나는 그야말로 생명샘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고, 고백과 경청, 관용으로 다가서는 말씀의 나눔은 삶의 나눔으로 이어졌고, 선배들의 경험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실패와 낙심, 상처와 아픔들,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제기되는 한국교회와 목회현장에 대한 자기성찰은 내게 보배와도 같았 다.
말씀을 통해 위로 받고 서로 격려하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모두 가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이 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겸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신앙의 선배들은 내게 소중한 만남으로 계속되고 있다. 깊은 영혼의 울림을 일으 키며 잔잔히 하나님을 향하는 경험은 참으로 소중하다. 공동체 성서연구와 함께 목회를 시 작한 나는 기쁜 소망을 하나 간직하게 되었다. 말씀과 삶의 나눔을 통해 신앙의 형제됨을 회복하고 공동체의 영성과 온전함의 영성을 지향하는 교회들이 경쟁과 우열을 넘어서 형제 교회됨을 고백하며 지역의 교회공동체를 이루어 하나님의 샬롬공동체를 일구는 바로 그 날 을 소망한다.
선배가 준 교회 의자는 올해 초 교회를 개척한 친구에게 보냈다. 지역내 어려운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한 방과후 교실을 열기 위해 우리 교회도 마루교회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벌써 반년이나 지났고, 여름을 보내고 중,고등학생들까지 함께 해 20여명의 작은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다.
다음에는 그 교회의자가 어디로 갈지 거취를 주목해 볼 일이다.
지금은 성서연구 본문을 가지고 일주일을 묵상하며 말씀이 내 삶을 이어가도록 하고 있 습니다. 주일 설교 또한 말씀묵상의 절정에 있습니다. 일주일동안 온 교인들이 함께 묵상하 고 삶을 나누도록 노력합니다. 그런한 삶의 고백들이 모여 함께 예배합니다. 모두가 함께 다 짐하고 소망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일꾼, 생명의 문화를 가꾸는 교회. 문화교회 의 성도들은 모두 일꾼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일꾼들입니다. 바로 예수 일꾼입니 다. 그러한 예수일꾼들이 모여 이 땅에 생명의 문화를 가꾸며 살아가는 예수공동체가 바로 문화교회입니다. 그러기에 문화교회에는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고 교 회표어를 나눕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읽는 말씀, 진정 살아 튀는 말씀, 자유로운 성령 의 역사를 함께 고백하고 증거하며, 삶으로 이어가는 하나님의 일꾼들, 거기에 생명의 문화 는 자리할 것으로 나는 확신합니다. 아니 내가 어디 있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우리는 오늘도 감사하게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 약속과 다시 일어나는 부활의 힘을 우리는 공동체 성서연구를 통해 더욱 절실하게 이어갑니다.
* 양승봉전도사 (천안 문화교회 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