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숙
"엄마! 이거 누가 그랬어? 엄마 책에 볼펜으로 누가 이렇게 했어?. 나는 아닌 데. 혼내 줄거야?"
지난 호 햇순 표지를 보고 5살 박이 우리 큰 아이가 한 말이다.
월요 성서 모임에 다녀온
내 남편은 꾸러미 꾸러미 들고 온 햇순을 교회에 예쁘게 장식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짧은 오전 시간의 자유에 난 작은 아이(2살)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다. 엄마가 들여다 보
는 책속에 알 수 없는 말들을 함께 하고 픈 작은아이의 몸부림에 행복한 한 때를 느낀다.
그렇게 햇순은 우리 가족에게 그야말로 살아 있는 우리의 생활임을, 삶의 일부임을 확인한
다.
오랜 연애기간 동안 난 지금의 남편에게 조그마한 텃밭의 꿈을 이야기했었다. 작은 텃
밭에 배추, 상추, 오이, 가지, 토마토, 당근같은 서로 다른 채소들이 옹기종기 들어 앉아 있
듯이 인생의 텃밭에 여러 가지다른 일들이 있지만 하나같이 식탁을 풍성하게 하는 생명의
풍성함을 드러내는 그런 텃밭, 서로 다른 채소들이지만 싸우지 않고 그져 자신의 자리에 최
선을 다하는 모습처럼 서로 다른 생각과 모습의 사람들이 함께 작은 텃밭의 울타리 안에서
사랑하며 어울려 사는 희망의 텃밭을 이야기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을 풍성하게 가꿀
인생의 텃밭을 함께 하고 푼 꿈을, 또한 정말 그런 작은 텃밭하나를 가꾸고 싶은 마음을 우
리는 자주 나누곤 했었다.
결혼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그 조그마한 텃밭의 꿈은
막연함 속에서 고민만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남편을 통해 공동체 성서연구를 소개
받고, 그 안에서 나눔을 배우고 말씀을 몸으로 읽고자 하는 노력들을 보았을 때 조그마한
예쁜 텃밭을 가꿀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작지만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는 내 조그만
텃밭의 꿈은 공동체 성서연구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싱그럽고 탐스럽게 열매를 맺을 수 있
을 것 같은 자신감 같은 거였다.
떠 먹여 주는 밥에 길들여져 있는 어린아이처럼 지금까지
나는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그 날 그 날의 설교에 익숙해져 있었다. 말씀과 함께 하는 내
삶의 나눔이나 말씀의 나눔은 내게 생소한 말들이었을 뿐!
더욱이 개척교회에서 이른바 '사
모'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면서부터는 예배를 도와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늘 교
회 뒷자리에 고정석을 만들고 하나님과 나의 온전한 사귐이 아닌 남편인 설교자와 몇 안 되
는 듣는 교인들의 사이의 반응과 분위기를 엿보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이러지 말아야지.'
매번 마음을 다져 먹지만 예배를 마치고 나면 나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공동체성서연구를 통해 나누는 일을 훈련하고 묵상하는 일을 즐겨 하면서 하나님은
내게 예배의 참된 기쁨과 소망을 허락하셨다.
아직도 "묵상한 것을 나눠 봅시다."하면 시선
집중 할 다른 곳을 열심히 찾는 우리들, 그러나 이내 "전도사님 저 계속 시키시면 교회 못
나와요"라며 콧소리 섞인 말을 하는 한 성도의 말에 웃음 바다로 말을 잇는다.
웃음과 눈물,
기쁨과 슬픔, 기도하며 눈물을 쏟고 말을 잇지 못하는 시간 속에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 안
에 하나임을 깨닫게 되었다.
어찌하든지 말씀의 나눔을 삶과 사랑의 나눔으로 이어가기를
최선을 다하는 우리들, 말씀 안에서 삶을 나누며 생명을 부등켜 안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사
람들이지만 늘 고백하는 한 가지는 최고의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릴 수 있는 우리이다.
나는 이제 텃밭의 새로운 꿈을 꾼다. 내 텃밭, 내가 가꾸는 텃밭이 아닌 하나님의 가꾸시
는 텃밭에서 나는 이제 싱그런 한 채소의 자리를 찾았고 그렇게 말씀안에서 나의 싱싱함을
찾아 그렇게 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랑과 평화와 생명의 공동체를 그 아름다
운 작은 텃밭을 지금 하나님께서 공동체 성서연구를 통해 다듬고 가꾸고 계시다는 것을 나
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 이고숙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