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여기저기 피어나는 개나리, 진달래, 목련…….
'야, 드디어 봄이다!' 내 마음속에서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번 봄은 유난히도 더디게 온 것 같다. 꽃샘 추위가 길었던 만큼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해서 더 그런 것 같다. 뭔가를 간절히 기다릴수록 너무 더디다고 느끼는 것은, 기다리는 것 자체보다 마음이 앞 서가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는 '기다림'이란 단어가 너무 싫다. 그 동안 개인적으로 기다림의 경험이 지치도록 많았기 때문 이다. 물론 싫어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기다림이 없으면 합당한 열매도 없음을 잘 알기에, 나를 향한 하나님의 기다림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존재할 수도 없음을 믿기에 더욱 그렇다.
내가 신앙적으로 가장 깊이 느끼는 하나님의 마음은 '오래 참으심'이다. 강한 이기심과 고집과 완벽 주의적 성격으로 무장되어‘나의 의로움’을 붙들고 살았던 지난 날들, 그 분의 기다림의 사랑과 오래 참으심의 성실함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나의 의로움’으로 구원받는다고 확신하는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라 말하겠지만 - 어리석고 불쌍한 의인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리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내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 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고생을 좀 했다. 한가지로 이야기가 이어져야 할텐데 자꾸 곁가지를 치는 바람 에 글쓰기가 힘겨웠다. 한 단어를 떠올리면, 나를 인도하셨던 그분의 손길이 그 단어와 관련된 일들에 연결되어 마구 쏟아져 나와 글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내 삶에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주 체할 길이 없는 것이다.
몇 년 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나 외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 니고는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물론 삶의 모양과 생각뿐 아니라 나만이 아는 깊은 내면의 변화까지 들여다 보며, 하나님이 하시면 변화시키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을 향해 내가 뭔가를 해서 그 사람을 고치고야 말겠다는 고집을 버리게 되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말씀 을 의지하며,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시는 그 마음으로 남을 바라보고, 나도 잘 기다리는 사람이 되려고 정말 애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기적인 마음이 불쑥 불쑥 일어난다. 그때마다 그것을 자각하며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기도하지 않으면), 나만을 생각하고 사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 는 내 자신에게 놀랄 때가 많다.
어려서부터 혼자서 차지하는 공간과 시간이 많다보니 자신과의 대화에 익숙해져 있었고, 나 외의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이기심과 이타심 사이에서 늘 갈등하는 내게, 공동체성서연구는 아주 유익함을 주고 있다. 여러 사랑 하는 지체를 만나게 하시고, 공동체성서연구를 통해 성서적 사고를 하도록 도움을 받게 하신 분이 ‘나 의 사랑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잠이 깨 감사를 드리게 된다.
‘공동체’라는 단어가 요즘 내겐 정말 귀하고 귀하다. 성서를 같이 묵상하고 이야기하며 그 말씀을 몸으로 살아내는 아름다운 지체들을 매주 만날 수 있다는 흥분을 가눌 길이 없다. 우연히(?) 공동체성서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지만 나의 우연은 하나님의 필연임을 확신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체들과 함께, 몸으로 성서를 읽으려고 노력한다. 주님의 기다림이 있는 한 두려움 없이 말씀 앞에 정직할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내가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기다려주심을 깨닫게 된 것도 참 감사하다.
삶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과정이라고 여기며, 그분의 기다림이 그렇게 되게 하심을 믿는다. 그러기 에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며 살려고 한다. 내가 접하는 모든 일들과 사람 가운데, 주님은 날 마다 은혜를 쏟아 붓는다. 나는 그 은혜가 흘러 다닐 길을 만들며 사는 사람임을 기뻐한다. 늘 변함없이 이런 마음을 지니고 살았으면 좋겠다. 좋은 시가 하나 떠오른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버리고 갈 것은 버리고 갑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가지고 갈 것은 가지고 갑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버리고 갈 것과 가지고 갈 것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누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도 모르고 외는 시지만, 내가 영성에 관해 관심을 갖도록 도와 준 시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산에 오르는 이가 지녀야 할 자세를 잘 표현한 것 같아 좋아한다. 내가 버려야 할
것과 가져야할 것을 잘 아는 사람이 되고, 주님의 이끄심에 기꺼이 따라가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공동체에는 기쁨이 되며 내게는 감사가 넘치게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은 소원이 가
득하여 나의 삶은 매순간마다 늘 가슴 벅차다!
* 이수연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