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2001. 4)

아버지의 향기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밤이면 섬돌 밑에서 귀뚜라미까지 울었다.
" 오늘버텀 공살 시작혀야겠구먼."
아침 상머리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리고 똥지게를 찾아내 놓고, 똥통도 꺼내 놓고, 마루 밑에서 헌 장화까지 꺼내 놓으셨다. 어머니가 장화를 마루 걸레를 닦으셨다.
" 그건 뭐러 닦어?"
" 그래두요."
"그것 참……."
막상 오후가 되어 어버지가 똥지게를 지고 나서자 어머니는 기막힌 표정을 지으셨다.
" 그럴지구서 읍네까지 가시게유?"
" 그럼, 지구 가지 않구 이고 가? 똥통 없이 워떻게 똥을 퍼?
어버지가 퉁명스럽게 대꾸하셨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성거렸다.
" 아가, 너는 공불혀라. 미안헌거만치 공불혀. 이 시상에 에비보다 더 좋은 사람이 워찌 또 있겄냐? 인자 할미 맴이 편타."
할머니가 나를 품에 안으며 등을 토닥이셨다. 어머니가 돌아서서 치마 끝으로 눈가를 흠치 셨다.
"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똥바가지 생각을 못혔네."
아버지가 똥지게를 바깥마당까지 나갔다가 되돌아와 도로 내려놓으셨다.
" 지가 갖구 갈께유."
나는 할 일을 찾아냈다 싶어 뒷간으로 달려갔다.
" 저 녀석 좀 보게."
아버지가 그리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셨다.
나는 똥바가지를 어깨에 메고 똥지게진 아버지 뒤를 따라갔다.
" 이 더위에 부자간에 똥지게 지구 워디가는겨?"
동구 밖 정자나무 밑을 지나는데 그늘 밑에서 장가를 두던 동네 어른이 아는 체를 했다.
"그럴 일이 있다네."
아버지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고 당당하게 걸었다. 나는 똥바가지를 어깨에서 내려 들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상여집을 지나고, 성홛아 고개도 넘었다.
"인규야!"
아버지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셨다.
"예."
"매사가 다 그러혀니라. 뭐시냐, 암만 큰 일도 시작은 쪼맨한 거여. 늬가 그때 뭐시냐, 시계 만 빌려 차지 않았드라도 이렇게는 안 됐을 거구만."
"예."
" 공부도 그런 겨. 두고두고 쪼매씩 허다 보면 나중엔 큰 공부가 되는겨. 많은 걸 알게 되는 겨."
"예."
아버지는 무슨 얘긴가 하고 싶어하셨다. 보기를 들어 설명하시는데 그게 잘 되지 않는 모 양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가 다 말하지 않아도 그 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떙볕 아래 신작로를 걸어가는데 철길로 기차가 지나갔다.
기차에 탄 사람들도 똥지게 들 지고 똥바기를 메고 걸어가는 아버지와 나를 이상스럽게 바 라볼 것 같았다.
"덥쟈?"
"아뉴."
아버지가 밀짚모자를 벗어 내 머리에 씌워 주셨다.

30리 길을 걸어 막상 정거장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와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그러나 아버 지는 곧 작업을 시작하셨다.
" 널랑은 그늘 밑에 앉아 쉬고 있그라."
똥통 두 개에 똥을 가득히 퍼담은 아버지가 지게 고리에 똥통을 걸어지고 일어서며 말씀하 셨다.
"……."
" 내 퍼뜩 다녀오마!"
그러나 나는 똥바가지만 변소 벽에 기대놓고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왜, 쉬고 있으랑게."
"……."
아버지는 어느새 지름길을 가늠하셨는지 철길로 접어들었다. 길이 기울다 보니 똥지게가 기울고 똥통이 흔들렸다. 나는 길가에서 풀을 뜯어 똥통 위에 덮었다. 햇볕은 여전히 따가웠 다.
"몇 차례 왕복허면 해가 설핏해질 게야. 그럼 좀 낫겄지."
아버지가 혼잣말을 하셨다.
나는 울고 싶었다.
다행인 것은 악취나는 똥통을 지고 시내 복판을 지나지 않아 좋고, 정거장 화장실과 농업학 교 거름통까지의 거리가 가까워진 것이었다. 아버지는 곧장 학교 후문 쪽으로 걸어가셨다. 철길로 해서 학교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 실습장 거름통으로 이어지는 길까지 보아 두셨던 모양이다. 똥통을 기울여 거름통에 오물을 쏟아붓는 아버지 이마와 코끝에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인규가 풀을 뜯어 덮어서 길바닥에 쏟질르지 않구 왔구나."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셨다.
"지가 풀을 많이 뜯어다 놓을께유!"
"그럴 것 없다. 저기 있는 지푸라기 좀 가져가면 된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나는 얼른 농기구 창고 옆에 쌓아 놓은 지푸라기를 한아름 챙겼다. 그 리고 계속해서 아버지 뒤를 따라다녔다. 앉아 쉬라는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빈몸 이었다. 아버지도 더 이상 말씀이 없으셨다.
몇 행보를 했을까? 해가 기울면서 더위는 좀 누그러졌다.
"시원할 때 몇 번 더 펴내야지……."
아버지는 일손을 놓지 않으셨다.
"……그라구. 인규야 너 ……."
"예?"
"에비가 좀더 퍼내구 갈테니, 널랑 막차 타구 먼저 가려무나."
"……."
나는 이번에도 아버지 말씀을 듣지 않았다.
"내는, 입성에서 냄새두 나구, 그러니 걸어갈란다. 그러니 널랑 기차 타구 먼저 가려무나."
아버지가 다시 말씀하셨다.
"……"
그러나 나는 잠자코, 아버지가 통에 퍼담은 똥 위에 지푸라기를 펴 덮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더 이상 말씀이 없었다.
"힘들 것인디……."
"……."
나는 '아버지가 힘드시지요. 함께 있을께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냥 삼켜 버렸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철둑길을 걸어가는 아버지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막차가 지나가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많이 퍼냈구나."
깜깜한 변소 속을 들여다보시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눈엔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지게는 두고 가자. 내일 또 올 테니께."

이튿날부터는 갈 때만 기차를 이용하고, 돌아올 때는 걸어야 했다. 막차를 타려면 중간에 일손을 놓아야 하고 그러면 시원할 때 능률을 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연일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내가 먼저 지쳐 쓰러졌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아버지 등을 업혀 돌아 왔다. 이튿날도 아버지는 툭툭 털고 일어나셨다. 나도 일어났다. 그 러나 나는 따라나서지 못했다.
" 딴 생각일랑 허덜 말어!"
아버지도 말리셨지만 할머니가 놓아주시질 않으셨다.
"더위를 먹은겨. 그만침 했음 된겨. 종일 애쓴 에비 등에 또 업혀올 생각은 허덜 말어야 써."
할머니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내게 잣죽을 쑤어 주셨다.
"얘야, 잘못허다가 우리 가문 줄초상 나겄다. 씨암탉 한 마리 잡어. 대추, 마늘 찹쌀에다 육 년근 인삼 한 뿌리 넣어 삼계탕 끓여야 쓰겄다. 그랬다가 에비 오면 몽땅 뜯게 혀야써."
할머니가 이어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일종의 명령이었다. 어조가 다른 때와 같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왜 여지껏 안 오시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해가 진 지 오래였다.
"에비가 오늘은 좀 늦나 보구나."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저녁상을 못 보게 하셨다.
평소 같으면 아버지는 이미 집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마당가 오동나무 가지에 열나 흘 달이 걸리도록 아버지는 오지 않으셨다.
나는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어머니가 할머니와 나에게 부채질을 해 주셨다. 방 금 다림질이 끝난 후였다. 안마당엔 다북쑥 타는 연기가 모기를 쫓고 있었다. 그때 사립 쪽 에서 아버지 그림자가 먼저 나타났다.
"당신, 똥지게는 왜 지고 오셔유? 벌써 뒷깐을 다 지우신 것은 아닐 테고……."
어머니가 부채질을 멈추며 일어나셨다. 나도 놀랐다. 아버지가 왜 똥지게를 걸머지고 오셨 을까? 아직 동포역 변소 똥은 반도 더 남아있을 텐데.
"임자, 인자 똥지게는 안 져두 되게 되얏네. 이 사람아, 훌륭헌 선상님을 만났지 뭔가. 오 늘!"
어버지는 술이 취해 있었다. 똥지게를 내려놓고 일어서시는데 비틀거리셨다. 그러나 똥바가 지까지 메고 오셨다.
"……어머님, 지가 오늘 술 한 잔 마셨습니다유. 용서허세유, 어머님!"
아버지는 똥지게를 안마당에 팽개치듯 벗어놓고 마루 끝에 털썩 앉으셨다.
" 어머님, 오늘유, 지가 평소대루 똥지게를 지구, 똥이 가득 담긴 똥통에 출렁거리지 말라구 지푸라기를 덮어가지구, 동포농고 실습장 거름통에다 똥통의 똥을 쏟질러 붓는디 말씀유, 어 머님!"
아버지는 마른침을 삼키셨다. 그러자 어머니가 얼른 부엌으로 가 냉수 한 대접을 떠다 드 렸다.
……어머님, 그런디 말씀유 어머님, 그때 실습 담당 선상님이 나타나셨슈. 그동안 일본 대판 서 열리는 아시아 농업기술자 대회에 참석하구 돌아오셨다구유. 만나야 헐 선상님이 거기 나타나셨던 거쥬. 절더러 선상님이 누구슈, 허구 묻더라구유.
그때 마침 저는 힘이 들어 미루나무 그늘 아래 똥지겔 내려 놓구 쉬고 있었거등유. 살갖이 햇볕에 그을렸는지 본래 태생이 그런지 모르지만 여하튼 검둥이 같은, 그러나 콧날이 겁나 게 높은 선상님이 토마토를 따며 물었슈. '누구슈? 하구유.'
아버지는 마치 그 실습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목소리라도 흉내내듯이, 실감나게 그 정경 을 재연하고 계셨다. 내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그것마저 만류하면서 술에 취해 약간은 비틀 거리며, 그러나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조금도 아낌 없이 전달하려는 몸짓으로 다음 말을 이 으셨다.
"……잠깐 좀 쉬어 앉으셔유! 실습담당 선상님은 권련을 권하며, 지가 앉을 자리꺼정 마련하 셨슈. 그리구설라무네. 저를 보데유. 제 행색을 살피시더라구유. 저는 그간에 있었던 사연을 시시콜콜 선상님헌티 말씀드렸지유. 그러자 선상님이 말씀허시기를, 어버님! 내일부텀, 아니 지금 당장 똥지겔 벗어놓으세유. 내일 빈 몸으루 나오시면 우리학교 학생덜 동원허겼습니다. 근로 장학생들이 있는 거름 마찰 꺼내서 삽시간에 치우자구유 아드님 또한 우리 핵교 학상 아님감유? 어머님, 참 저는 그 순간 시상 사는 맛이 나드라구유. 그려서 그 선상님과 술을 한잔 마셨구만유……."
아버지가, 오동나무 이파리의 달 그림자가 일렁이는 마루 끝에 앉은 채, 할머니를 보면서 가다가 어머니를 건너다보면서, 그리고 나는 내려다보시며 띄엄띄엄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우물쪽으로 가시더니 언제 준비하셨는지 막걸리 주전자를 꺼내오셨다.
"잘혔네. 오늘은 술 마실만헌 날이구먼. 나도 한잔 마심세!"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모깃불 연기 속에 달이 점점 높이 떠오르고, 그 달빛에 오동나무 그림자는 이제 대청마루 벽면에 일렁이고 있었다.
"……인자 다 됐슈, 어머님! 거름 마찰 꺼내서 삽시간에 동포역 뒷간을 치운대유, 그럼 그 밑바락에 잠자던 그 시겔 건져낼 게 틀림 없잖유?"
어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려, 지성이믄 감천이라드만 자네가 기어코 그렇게 해내구야 말았구면."
할머니가 술잔을 입으로 가져가셨다.
그때 아버지가 다시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운 내 얼굴을 내려다보셨다.
"인규야!"
"예?"
"인규, 너 말여! 증말 그 변소 속에다 시곌 빠치긴 빠친겨?"
아버지가 고갤 숙이시더니 내 귀 쪽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
그때 아버지의 입에선가 아니면 똥지게를 지고 오신 옷에선가, 술냄샌지 아니면 거름 냄샌 지 또는 땀 냄샌지 모를 이상한 냄새가 내 코를 벌름거리게 했다.
"당신두 참, 물을 걸 물어야지……"
어머니가, 할머니 대신 부채를 들어 아버지와 내게 골고루 바람을 보내며 목소리가 젖어 있 었다.
"못 미더워 묻겄냐……."
할머니도 말끝을 흐리셨다.
"그 똥 참 아깝게 그랴!"
한참만에 아버지가 입맛을 다시며 엉뚱하게도 똥타령을 하셨다. 나는 방금 전 아버지가 내 게 입을 가까이 대셨을 때, 그 입에서 또는 몸에서 풍겼던 냄새가 무슨 냄새였는지를 생각 하느라고, 잠시 그렇게 딴생각을 하느라고, 아버지 말씀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러나 다음 순간'뒷간에 시곌 빠친 건 사실이냐?' 는 아버지의 실없는 농이 뒤늦게 눈물을 핑 돌게 했다.

우리 집에는 시계가 여러 개다. 방마다 벽시계, 식구마다 손목시계, 그리고 거실과 화장실에 도 하나씩 걸려 있다. 이런 시계들은, 때로는 초침이 멈춰 있거나 조금씩 움직인다 해도 마 냥 제자리 걸음일 경우가 있다. 그러나 건전지를 갈아 끼우면 금세 살아나 재깍재깍 잘도 간다. 이 밖에도 몇 개가 있지만, 우리 집에는 또 다른 시계가 하나 더 있다. 아주 오래된 손목 시계로 태엽을 감는 구식이다. 시계 줄은 가죽띠로 장식은 녹슬어 있다. 서랍 속에서 가끔 꺼내어 코 가까이 대보면, 옅은 냄새가 난다. 분명 무슨 냄샌가 나기는 나는데, 그 냄 새가 무슨 냄새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오래된 가죽 냄새인지, 때에 절은 땀 냄새인지, 이 것도 저것도 아니면 또 무슨 향기인지…….
30여년간 가지 않는 이 시계는, 시침과 분침이 다섯시 반쯤에 멎어있다. 긴 바늘과 짧은 바 늘이 아주 정겹게, 가까운 거리에 다가 서 있다.

승주산 정기받아
항문을 닦고
장지천 구비구비
꿈을 키운다.
똥퍼! 똥퍼어!
똥퍼 중학교!

이 시계를 볼 때마다 목청껏 외쳐 부르던 중학교 교가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