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규 연재동화

강정규 연재동화 (2001. 5)

돌

        산딸기 있는 곳에
        뱀이 있다고
        누나는 말하지만
        나는 안 속아…….

우리들은 숲속을 헤집으며 가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은 다른 해 겨울과 비교할 수 없으 리 만큼 추었습니다. 나는 여름엔 무덥고, 겨울엔 맵추운 것이 좋았습니다. 더우면 물총새 우는 갈숲 속 의 냇물을 툼벙 뛰어들고, 추우면 추울수록 얼음이 매끄럽게 얼어 썰매를 타기가 좋았지 때문입니다.
아버지에게 야단을 맞으면서 들판 가운데 가장 큰 우리논의 물고를 막아 물을 잡아 놓고 얼기를 기다 립니다. 썰매 손질과 송곳 만들기에 며칠을 두고 코부리 아저씨네 대장간을 들락거렸습니다. 새벽참에 눈을 뜨면, 운동회를 앞두고 뒷산에 알밤을 주우러 다니듯 물 잡아 놓은 논배미에 가 보는 것이 일이었 습니다. 얼음이 체 두껍게 얼기도 전에 어머니 몰래 썰매를 타러 갔다가 풍덩 빠져 버려, 명주 바지에 솜버선과 옥색 비단 대님까지 흙투성이가 되어 얼어 가지고 덜그럭거리며 돌아옵니다.
할머니는 내가 어머니에게 꾸중들을까 봐 쉬쉬하시며 안방으로 불러들고는 바지를 홀랑 벗겨서 요로 내 아랫도리를 똘똘 말아 술독처럼 아랫목에 앉힙니다. 그리고 선반에서 항아리를 내려서 그 속의 곰삭 아 달디단 고욤 알을 하나씩 내 입 속에 넣어 주시면서 조웅전이랑 충렬전이랑 삼국지 얘기를 들려 주 셨습니다.
그렇게 바지를 망쳐 놓은 날이 눈이라도 내린 다음이면, 할머니로 하여금 시중을 들게 하고, 나는 새 를 잡았습니다. 마당 가운데 눈 쓸린 곳에 삼태기를 막대기로 받쳐 놓고는, 그 막대기에 잡아 맨 새끼줄 을 문구멍에 통과시켜 잡고 앉아서 손바닥만한 유리 조각을 통해 밖을 내다봅니다. 삼태기 아래 뿌려 놓은 낟알을 줍기 위해 날아올 새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약디약은 새는, 할머니가 투덜거리며 쓰 러진 삼태기를 다시 세우기 위해 드나드시게 할 뿐, 잡히지 않았습니다. 무논에 아이들이 모여 썰매 타 는 모습만 눈앞에 어른거리고, 뒷문 밖 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밤이면 나는 '추워라, 얼어라, 바람아 쌩쌩 불어라'를 속으로 되뇌며 열두 번은 재탕하는 할머니의 옛날 얘기를 꿈속같이 듣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 겨울은 참으로 지독하게 추었습니다. 그러나 지독하게 추운 그 해 겨울이 나를 조금도 기쁘게 해주지는 못했습니다. 매끄럽게 언 빙판 위를 썰매로 신나게 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 이 생긴 것입니다.
그 해 여름에 일어난 전쟁은 그 겨울까지 꼬리를 끌고 있었습니다. 황해도 웅진이라는 곳에서 배를 타고 피난 온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예쁜 소녀가 있었습니다. 내가 나중에 자라서 장가 를 든다면 꼭 아내로 얻고 싶은 그런 소녀였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다리를 저는 목수였습니다. 다리 병신 목수라서라기보다 전쟁 중에 할 일이 없으니 놀았습니다. 우리 집 옆에 간신히 집이라고 한 칸 세우고는 양지바른 툇마루에 나앉아 나무 조각을 깎 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어른들의 얘기로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상여를 만든다면서?"
"음, 그러고 보니 애당초부터 상여 만드는 목수였군."
"전쟁 중에 상여가 팔려?"
"사람 잡는 전쟁이니까. 하하하!"
나도 처음엔 피난 나오다가 부상한 다린 줄 알았는데, 어렸을 적부터 다리 병신인 것을 알게 되었습 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틈만 나면 소녀의 아버지가 일하는 곁에 서 서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목각을 하거나 그 위에 청홍으로 환을 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나 소녀의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이나, 끌이나 칼로 파내고 깎으며 물감 붓이 그려 나가는 여러 가지 모양의 상여 부분품을 구경하는 것보다는 소녀를 한 번 만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럴 때 나의 조끼 주머니 속에는 군감자라든가, 볶은 콩이라든가, 어머니 경대 서랍에서 찾아 낸 작은 꽃 모 양의 머리핀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소녀를 만나게 되면 나는 그런 것들을 선뜻 소녀에게 내주지는 못하고, 소녀가 내 곁을 지나가거나, 내 곁에 잠시 서 있는 동안 가슴을 울렁이다가 겨우 한다는 소리가
" 너 숙제 다 했니?"
그러면 소녀는 고개를 흔들거나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면 신들린 사람같이 일에 열중하던 소녀의 아버지가 고개를 들고 곁에 내가 서 있었음을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도령이 오셨구먼. 이런 것 봐도 부모님께서 나무라시지 않아?"
그러나 나는 그 말뜻이 무언지 잘 몰랐습니다. 그저 나에게 친절하게 말이라도 걸어 주는 아저씨가 고맙고, 그래선지 아저씨가 만들어 내놓는 부분품들이 맞추어져 꾸며질 상여는 아주 아름다울 것같이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할머니의 옛날 얘기 가운데서 들은 꽃상여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어떻든 그 해 겨울은 몹시 추었지만 그것이나를 조금도 기쁘게 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겨울 날씨 푹한 것이 한 부주인데……."
어른들의 이런 말이 참으로 그렇다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녀의 옷이라곤 얇디얇고 짧은 검정치마와 같은 천의 저고리 한 벌뿐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
        기차 소리 요란해도…….

계집애들이 노래 부르며 고무줄 넘기를 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랬습니다. 따뜻하게 털로 짠 옷이라도 입고 동무들과 어울려 노는 소녀를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언제나 조용하게 뒷방 속에 있거나, 잠깐 눈에 띄었다가는 부엌에 들어가 엄마 일을 도왔습니다. 소녀의 엄마는 목로를 차려 놓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탁주를 팔아 식구를 먹여 살렸습니다. 모시로 유명한 한산에서 이십 리 떨어진 장터의 길 초입이어서 장날은 더러 손님이 있었으나 이 장사도 신통치는 않았습니다.
장항선 열차가 산모퉁이를 돌며 길게 기적을 울리면 소는 곧잘 문 밖이자 길가에 나와 서 있곤 했지 만 공터의 아이들 놀이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가는 길에도 소녀는 혼자였습니다. 늘 입는 검정색 광목 치마 저고리에 만월표 검정 남자 고무신의 차림새로 길게 양갈래로 땋아 늘인 머리카락만 흔들렸습니다.
학교로 가는 길에 북풍이 몰아치는 신작로 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는 소녀의 모습을 보고, 나의 따뜻하 게 차려 입은 옷과 견주어 보게 된 나는 목도리와 장갑을 벗어 들었습니다. 왠지 소녀와 같이 추위를 견디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장갑과 목도리를 벗어 든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망설이 고 망설이다가 목도리와 장갑을 소녀에게 내밀었습니다.

        소녀가 저만큼 나타나면 나는 따뜻하게 구워진
        돌멩이를 종이에 싸들고 소녀 앞으로 다가섭니다.
        그리고 불쑥 그것을 내밀며 소녀는
        아무 말 없이 받았습니다.

"이것 두르고 끼어, 응?"
"……."
소녀는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가만히 흔들었습니다. 고개를 흔들고 나서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나도 한참 서 있었습니다.
"앞에 가."
드디어 소녀가 말했습니다. 나는 앞서서 걸었습니다. 뒤를 돌아볼 수가 없어 그대로 학교에 왔습니다. 교실에 들어와 내다보니까 뒤따라온 소녀가 저의 교실로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튿날 나는 아예 목도리도 장갑도 집에 두고 나섰습니다. 춥고 손이 시릴 때 나는 마음이 놓였습니 다. 소녀처럼 나도 춥다고 생각하니 조금 기뻤습니다.
그 날 나는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다가 아주 귀중한 사실을 알았습니다. 남향받이 잔디밭에 불 을 놓고 쬐는데 한 아이가 마른 쇠똥을 주워 왔습니다. 말똥도 된다고 했습니다. 바짝 마른 쇠똥과 말똥 은 불이 붙어 오래 탔습니다. 그 위에 돌멩이를 올려놓고 후우 불었습니다. 쇠똥들은 바작바작 소리를 내며 새빨갛게 불빛을 냈습니다.
"쇠똥에 구운 돌멩이는 오래 따뜻한 거야."
"말똥에 구운 돌멩이는 더 오래 있다가 식는 거야."
아이들이 말했습니다. 뜨겁게 구워진 돌멩이를 종이로 싸서 주머니에 넣기도 했습니다. 알돌멩이를 이 손 저 손으로 옮겨 쥐면서 뛰기도 했습니다. 책보는 아예 어깨에 메거나 허리에 둘러 매고였습니다.
나도 돌멩이를 하나 얻어 가지고 우리들은 신나게 신작로를 달렸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소녀에게 돌 멩이를 구워 주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나는 이튿날부터 성냥을 챙기고 쇠똥과 말똥, 그리고 동그랗고 예쁜 돌멩이 줍기에 눈이 팔렸습니다.
동구 밖 산모퉁이에서 마른 쇠똥이나 말똥 불에다 돌멩이를 구우며 소녀를 기다렸습니다.
소녀가 저만큼 나타나면 나는 따뜻하게 구워진 돌멩이를 종이에 싸들고 소녀 앞으로 다가섭니다. 그 리고 불쑥 그것을 내밀면 소녀는 아무 말 없이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나란히 걸어갑니다.
이 일을 시작한 다음부터 나는 토끼털로 만든 귀마개와 장갑은 끼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소녀가 나에 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너 장갑 안 끼면, 나 이 돌멩이 버릴 거야."
나는 어쩔 줄 모르다가 대꾸했습니다.
"목도리는 안 해도 되지?"
"응."
소녀는 웃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북풍받이 쪽으로 서서 찬바람을 막아 주며 걷는 곁에서 소녀는 때때 로 내가 구워 준 돌멩이를 볼에 대 보는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못 본 체하고 걸었습니다.
"나 앞서서 빨리 갈까?"
"괜찮아. 그리고 이거 말야, 내가 깎은 건데 줄까?"
소녀는 머뭇대다가 불쑥 내가 돌멩이를 건네듯 종이에 싼 것을 내밀었습니다.
"뭔데?"
"우스운 거야."
나는 받았습니다.
"교실에 가서 펴 봐."
어느 새 교문을 들어서서 소녀는 저희 교실 쪽으로 뛰어가 버렸습니다. 나는 교실에 들어와 종이를 펼쳐 봤습니다. 그것은 예쁘게 나무로 깎은 팽이였습니다. 밑에는 못을 박아 동그랗게 갈았고, 위에는 청홍색으로 물감을 칠하고 테까지 두른 것이었습니다. 아마 자기 아빠의 목공연장으로 만든 모양이었습 니다.
나는 쉬는 시간에 손으로 돌려보았습니다. 아주 잘 돌았습니다. 팽이채로 힘껏 치면 운동장을 한 바퀴 뛸 동안은 쓰러지지 않고 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날 저녁때 나는 소녀와 장갑을 한 짝씩 나누어 끼고 돌아왔습니다. 함께 돌도 구워서 나누어 가졌 습니다. 빨리 가서 팽이채를 만들어 가지고 얼음판으로 가서 아이들에게 자랑해야겠다고 행각도 했습니 다. 그리고 그렇게 했습니다.
이튿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나는 동구 밖의 산모퉁이에서 쇠똥불에 돌멩이를 구우면서 소녀를 기 다리고 있었습니다. 불이 퍼져 나가 남의 무덤을 태우면 안 된다는 소녀의 말을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소녀는 늦도록 오지 않고, 함박눈만 푸지게 쏟아졌습니다. 불도 자꾸만 꺼졌습니다. 더 있다가는 지각하겠다 싶어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학교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 교실 문을 가 만히 열었지만 드르륵 하고 큰소리를 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선생님의 안경 유리가 번쩍 했습니다. 지각이었습니다.
그 날 방과후엔 변소 청소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여는 날보다 먼 것만 같았습니다. 돌멩 이 굽는 아이들과 어울리지만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부엌에서는 어머니와 소녀의 엄마가 메주 콩을 삶고 있었습니다. 소녀의 엄마는 때때로 우리 집에 와 바쁜 일손을 돕기도 했습니다. 나는 왜 소녀 가 학교에 오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용기가 없었습니다.
내가 방안에 들어가 벌렁 누워 있을 때 부엌에서 하는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집 애는 아무래도 남의 집에나 보낼까봐요. 집에 있어야 입힐 것을 입히나, 먹을 것을 먹이 나……내일 군산 양조장 집에 보내기로 했어요……."
소녀의 엄마 얘기였습니다. 한참만에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메주콩이나 한 사발 가져다주시지."
나는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갔습니다.
"메주콩 내가 갖다 줄게요."
나는 메주콩을 한 사발 받아 들고 건넌방으로 가서 벽장 속에서 설탕 봉지를 꺼내 한 주먹 쥐어 뿌렸 습니다. 그리고 소녀네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툇마루엔 소녀의 아버지도 보이지 않고 , 눈만 뿌려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부엌을 지나 지붕 처마에 잇대어 만든 소녀의 작은 방문 앞에 섰습니다. 댓돌 위엔 만 월표 검정 남자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그 신에 내 발을 끼워 보았습니다. 바닥이 얇 게 닳아 버려 보드라운 것 같았습니다.
문은 소리도 없이 열렸습니다., 방안은 어두컴컴했습니다. 소녀는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책상 보가 하얗기 때문에 그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내가 들어서는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습니 다. 나는 놀려 줄 양으로 살그머니 등뒤로 다가섰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멈칫 섰습니다. 소녀는 울고 있 었습니다. 손에는 동그란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새끼로 엮은 작은 바구니가 있고, 그 속에는 내가 아침마다 구워준 돌멩이들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그 날치 돌멩이를 꺼내서 가만히 돌무대기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 방을 나왔습 니다. 메주콩을 담은 사발은 어디다 어떻게 놓았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산모퉁이를 돌아 달렸습니다. 저 아래쪽의 들판에서 가장 큰 우리 논에는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 들며 썰매를 타는 모양이었습니다. 빗자루로 쓸어 가며 타는 신나는 썰매입니다. 아이들이 불렀습니다.
"썰매 타자."
"팽이 안 칠래?"
그러나 나는 그런 놀이가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나는 자꾸 뛰었습니다.
"싫어, 싫단 말야."
눈은 계속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