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숙
대학을 졸업하던 다음해 10월, 그해 3월에 목사 안수를 받고 공군 군목으로 부임하는 남편을 만나서 전라도 무안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였다. 믿음이 성숙하지도 조국의 산하를 애정 어린 눈 으로 바라 볼만한 마음의 여유도 없었던 나는 눈 만 감으면 떠오르는 결혼 전 다니던 교회의 대 학부 친구들의 모습과 명동거리, 광화문 거리등을 그리며 몹시도 가슴앓이를 하였었다. 가을과 겨 울의 바닷가는 스물 다섯 살의 새색시가 매일 대하고 살기에는 너무도 쓸쓸하고 황량하여 드디어 나는 목사사모라는 자신의 신분도 잊어버리고 중병에 걸려버렸다. 그런 중에도 어김없이 성탄절 은 왔고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한 장, 두 장 성탄절카드를 보내는가 싶더니 하루는 80여 통의 카 드가 한꺼번에 전해져 왔다.
목사사모가 되어 먼 시골로 간 친구를 위로하기 위하여 대학부의 형제 자매들이 보내준, 한 장 한 장마다 격려와 사랑이 가득 찬 카드들로 장식된 작은 사택은 봄이 와서 개나리, 진달래가 흐 드러지게 피어 전라도 땅도 그렇게 척박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증명해줄 때까지 아름답게 장식되 었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의 교제에서 홀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1년에 한 번, 진솔한 마음이 담긴 카드 한 장을 통하여 그간의 모든 무정함과 소홀함은 말끔
히 씻겨지고 늘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마음이 이제야 전달되는 것처럼 마음이 훈훈해지는 아름다
운 매개체-성탄카드는 그렇게도 따뜻한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교회를 개척한 몇 년간, 남편
과 나는 성탄절이 다가오면 그 해의 가장 아름다운 카드를 찾고 찾아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우리
교회 성도들과 기도로 도와주신 고마우신 분들께 1년간의 모든 감사를 담아 보내드리곤 하였다.
하지만 성도들과 지인 들이 늘어나고 또 일은 왜 그렇게도 많아지는지 카드를 쓰기 위해 휴가를
떠나지 않는 한 개개인에게 친필카드를 보내는 일은 점점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만
큼 카드를 쓴다는 일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안경점이나 양복집, 미장원에서 온 것이라도 한 줄이
라도 보낸 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면 꼭 그 집을 찾아가 감사의 표시를 하거나 물건을 구입하곤
한다. 하지만 결코 받고 싶지 않은 카드도 있다. 남편이 연급이 높아져서 소위 총대가 되고 부터
더욱 마음을 씁씁하게 하는 카드 같지 않은 카드들이 많이 배달된다.
크리스마스를 자기 교회의
선전 일로 알고 있는지 겉 표지엔 웅장[?]한 교회 전경, 속표지엔 담임목사 가족사진이 전부인,
싸인까지 인쇄된 그런 카드를, 받아볼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교회예산으로 일괄 구입하여
연회주소록 던져주면서 전도사나 사무원, 혹은 부목사들을 시켜서 전국교회에 뿌리면 그래도 목
회자들이 고마워 할 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더 끔찍한 일도 있다. 분명 성탄카드인데 사마
귀가 붙은 커다란 카드를 가득 채우고 있고 속장엔 그 가족사진(자기가 예수님의 남동생이라도
되는지) 어김없이 서명까지 인쇄된 차기 감독후보가 보낸 그 카드를 받고 하나님께 민망하여 우
편배달부에게 죄송하고 아이들 보기 민망하다. 그런 쓸데없는 낭비에 어렵게 드린 성도들의 헌금
이 낭비되고 온 세계의 나무들이 사라져 가겠지.....
나는 몇 년 전부터 기도하였다. '그래도 교단
대표될 분들인데 상식이라도 갖게 해주세요. 이런 카드 좀 안 받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응답인지
지난해엔 정말 몰상식한 카드가 많이 줄었다.
나는 남편에게 기쁜 마음으로 '여보, 내 기도가 응
답 된 거야.'
남편은 안쓰러운 눈길로 나를 보며 '내년에는 선거가 없어서 그래...'
* 이평숙 (이화여대 교육심리학과를 졸업하고 가정교육원 상담원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남편은 옥토교회 원성웅 목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