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강
최근 장상 총리서리의 인준을 놓고 정치권을 비롯한 세상이 시끄럽다. 정권 말기 누수 현상이라고 보기에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각종 인사비리, 각종 게이트가 쉴새없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시점에서, 최초의 여성총리 등장으로 인한 구설수 또한 만만치 않다. 인신공격형 발언부터, 역사인식, 재산, 아들 국적에 이르기까지 최초의 여성 총리로 지명된 그를 둘러싼 온갖 의혹의 눈초리들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인사청문회가 얼마 전에 끝났다. 장상 이대 총장을 총리로 지명한 것도 놀라웠는데, 무난히 통과하리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그의 인준안은 부결되고 말았다. 결정적인 이유는 청문회 시 그의 대답을 둘러싼 도덕성, 신뢰성이 문제였다. 장상 총리 지명자 개인적으로 보면, 7개월 잔여기간을 채울 총리가 되기 위해서 그의 인생이 완전히 ‘까발겨지는’ 수모를 당했다. 이같은 상황은 장상 총리 지명자 개인으로 보면 곤혹스러운 것은 말할 나위 없겠지만, 그만큼 국가의 중책을 맡는 사람이 갖는 ‘준비됨’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개인이 아닌 공인(公人)이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가 얼마나 무겁고 힘든지를 보여준다.
장상 총리 지명자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검증은 그가 과연 국무총리에 적합한 인물인가에 대한 검증이었으면 했다. 그렇지만 그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바라보면서, 과연 ‘그가 남성이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도 수많은 남성 국무총리들이 있어왔다. 그들에게도 이러한 비난의 화살이 있었는가? 나는 장상 총리 지명자를 향한 언론과 정치권의 융단폭격을 바라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이번 사건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물론 최초’의 여성총리 등장이라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한 나라의 국무총리는 최고의 지도력을 상징하는 것이며, 여성이 국무총리가 된다는 사실은 여성지도력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상이라는 한 개인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여성지도력이 향상되었다는 측면에서 매우 뜻깊은 일이다.
그와 동시에 공인(公人)이 가져야할 역사인식과 도덕성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그가 평범한 한 시민이었다면, 그의 아들이 미국국적을 가졌던 한국 국적을 가졌던 무슨 상관이겠는가? 아니면 개별적으로 김활란을 기념하는 상을 지지한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겠는가? 문제는 그가 한 시민이 아니고, 한 국가를 대표하는 행정수반이라는 점에서 철저한 도덕성과 역사인식의 문제를 검증 받아야 한다. 준비된 지도력만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긴 터널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 시대는 여성지도력을 원하고 있다. 여성지도력은 그간 남성들이 보여준 구태의연한 행태를 극복하는 새로운 대안임이 분명하다. 서로가 물고 물리는(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 분열과 갈등의 시대를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만들어가야 할 사명이 바로 여성지도력에 있다. 그런 점에서 장상 총리 부결사건을 통해서 준비된 여성지도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나는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본다. 여성지도력이 많은 사람들이 ‘신물’내고 있는 구태를 벗겨내고, 새로운 비전을 채우기까지 각고의 세월이 필요하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혼자의 힘으로 절대 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 여성단체와 여성들의 ‘비판적’ 격려와 힘실어주기가 필요하다. 여성지도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준비된 지도력을 훈련시키고 검증하여 흠없는 지도력을 재생산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도력은 한 개인의 능력에 좌우될 수 없다. 적어도 공동체적인 인식을 가진 여성지도력의 공동의 작업을 통해서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이다.
* 양 미 강 (한백교회 목사, 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상임운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교회개혁열린포럼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남편은 장애인 인터넷 방송국 운영자로 일하는 이철용 목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