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숭 리
원정출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들어보지 못했던 낯선 단어이다. 최근 들어 새롭게 합성해서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아기를 출산할 때쯤 되면 먼 곳 미국으로 가서 아기를 낳고 돌아온다. 출산과 함께 개인의 특성이 되는 요소 중에 사주(四柱)와 성별 그리고 출생지를 들 수 있다. 출산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 왜곡은 ‘사주택일!’ 다음은 성별감별에 의한 ‘여아 낙태!’였다. 그리고 이제는 정체성의 혼돈, ‘출생지 조작!’이다
사주란 한 사람이 태어난 년, 월, 일, 시가 그 사람의 네 기둥이 된다는 뜻이다. 옛 사람들이 하늘이 그 사람을 내신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피는데 정보로 사용했다. 사주를 앎으로써 아기가 최초로 모태에 잉태된 시기와 계절을 소급해서 알게 되고 그에 따른 부모의 환경(섭생했을 음식, 기후 등등)을 알게 된다. 이는 생년월일이 단순히 좋으냐 나쁘냐하는 운명론에 빠지지 않고 한 인간의 생체리듬을 읽어서 체질과 품성을 근거로 인간관계의 자료로 쓴다면 서로가 성숙한 사회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주택일의 무모함에 많은 사람이 빠져있다. 이는 내 안에 들어온 우주의 생체리듬을 왜곡하게 되는 것이다. 사주가 좋으라고 좋은 날과 시를 택해서 출산일을 잡고 또 제왕절개를 할 때 택일을 하는 일은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까지 성업중이다.
출생지 조작은 정체성과 역사의 왜곡이다. 일년에 5000명 정도의 한국인 산모가 출산일에 즈음하여 미국행을 한다. 미국신문이 집계를 해서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다. 오히려 한국의 일반 국민들만 모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뉴스거리가 된 듯하다. 이 숫자는 한국에 한 해에 태어나는 아이의 1%이다. 이 일을 비밀리에 주선하는 여행사가 10개나되고 비용은 2500만원에서 8000만원까지 한다고 한다. 미국은 한국과 같이 누구네 핏줄이냐에 따른 혈족주의가 아니고 어느 땅에서 태어났느냐 하는 속지주의여서 그 땅에서 태어나기만 하면 미국의 국적을 부여한다. 이 제도는 미국 땅에 팔려왔던 노예들의 후손들에게 문제가 된 영주권을 해결하기 위해서 마련한 제도라고 한다. 미국은 이 제도로 편안하게 노동인력을 확보하여 지금의 미국을 유지하는 것이란 말이 된다.
출생지는 단지 땅이 아니라 역사이며 정체성이다. 속지주의가 아니고 혈연주의의 땅 일본에서 출산이 되어 오늘도 눈물을 흘리며 아리랑고개를 넘어가고 있는 우리의 민족의 아기들인 제일교포들이 있다. 살기가 너무 서러워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 부모는 왜 이 땅에 살게 되었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왜 이 땅에 오셨나?’ ‘나는 왜 이 땅에 태어났나?’ 를 생각하면 울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한국사람이 일본 땅에 옮겨가 살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부터이다. 강제징용이 본격화된 것은 1930년대 말부터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면서 국가총동원법과 1942년 징용령에 의해 1944년에는 193만 명 해방직전에는 24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는 약 67만 명쯤. 나머지 귀화한 교포가 약 16만명정도 된다. 한사람 한사람에게 목이 메이는 사연이 쌓이고 쌓여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없는 신세타령이 곳곳에 아리랑고개가 되어 지금도 남아있다고 한다. 일본에 남아 아직도 넘고 있는 아리랑 고개들.
재일교포라고 하면 해방 전에 일본을 건너가서 계속 일본에 사는 한국인 및 그 후손들만을 말한다. 재일교포들의 후손들이 부모들로부터 듣는 말 중에 가장 무서운 말 - “너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이 말 한마디가 모든 훈계와 교육을 대신한다고 한다. 너는 이 땅에서 태어났지만 이 땅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경고이다. 일본 땅에서 태어난 한국인, 더하여 분단된 조국의 아픔을 더 골깊게 겪어야 하는 조총련 또는 민단 소속의 한국인에게는 속지주의도, 혈연주의도 넘을 수 없는 겹겹 아리랑고개이다.
지난 8월 달에 “해방된 민족,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주제로 목이 메이는 예배를 드렸다. 한국여신학자들이 2002년에 특별 기획으로 여성신학을 담은 <새하늘 새 땅을 여는 예배>를 마련하고 매달 드리는 예배 중에 하나였다. 57년 동안 아무도 초청해주지 않아서 고향에 오지 못했던 재일교포 조총련 여성들과 민주여성회 여성들의 방문이 우리 예배반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이 여성들은 기독교인들이 아니다. 공항에서 내려 시내로 들어오는 차 속에서부터 돌아가기 전날까지도 이들은 울고 또 울었다.
마지막으로 소원을 말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자기나라 땅에서 태어나서 사는 것이 소원예요.”
* 이 숭 리(새문안교회 권사,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예배반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