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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21세기는 신체지향사회(somatic society)라고 말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이 말은 인간됨의 표현을 몸으로 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그 몸이 오늘날 단지 '보여주는 몸'으로 바뀌어져 버린 데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젊고 건강하고 섹시한 몸을 만들까에 모두가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연간 2조원 대에 이른다는 국내 다이어트 시장의 규모는 '쭉쭉빵빵한' 몸에 대한 신화를 재생산하면서 현대인의 왜곡된 '궁극적인 관심'을 확인해주고 있다.
"살아 살아 내 살들아"라는 유행어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이영자씨가 무려 35㎏을 감량하고 연예계에 복귀했을 때 나는 그의 정체성이 이미 변질된 것을 보았다. 과거의 이씨는 넉넉한 몸집만큼이나 넉살좋은 웃음에 순발력 있는 화술로 즐거움을 주었다. 이런 그가 몸매 가꾸기를 통해 구원에 이르라는 우리 시대 신흥종교에 홀려 기꺼이 자기 몸을 다이어트 산업과 성형외과의 제단에 갖다 바친 충직한 전도사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한 손에 '돈과 기술만 있으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현대판 맘몬의 복음을, 또 다른 손에 '예쁘고 날씬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고전적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들고서 우리 앞에 나타나, 거액의 헌금을 챙긴 뒤 추락해 버렸다. 그의 등장과 몰락이 한 개인의 불운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그만큼 외모지상주의와 소비주의로 포장된 이단 종교의 음모가 거대하기 때문이다.
미(美)의 기준은 진(眞)이나 선(善)과 달리 본질상 주관적이며 시대에 따라 변모해 가는 특징이 있다. 자본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이전까지만 해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인'의 기준은 통통한 엉덩이와 크고 풍만한 가슴이었다. 그러던 것이 18-19세기 산업혁명과 더불어 중산층 남자들의 살찐 배가 성공과 부의 상징이 된 반면, 여성의 몸은 노동이나 생산과는 거리가 멀수록, 즉 갸날프고 연약할수록 매력적이라는 기이한 신화가 유포되기 시작하여, 오늘에 와서는 기형적으로 마른 몸매가 숭배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뚱뚱한 여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극히 정상 체중의 여성마저도 '살을 빼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날씬해지고 싶다'는 무제한적 욕구의 포로로 만드는 작금의 시장구조는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요 폭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글귀에 나오듯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요,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존귀하다는 인식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제 몸은 자연적인 선물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가꾸고 고치고 만드는 영역이 된 이상, 보여주기 위한 몸, 즉 잘 다듬어지고 관리되어진 몸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몸은 사회적 '왕따'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저항하는 예술적 표현의 일환으로 현직 중학교 미술교사 김인규씨는 자기 부부의 벌거벗은 사진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고 한다. 몸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화두로 삼아 오랜 창작활동을 해오던 차에, 정말 살아있는 몸,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정직한 몸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고 싶어 자신들의 누드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는 것이다. 그들 부부의 몸은 한마디로 '예외적'이다. 해직의 아픔을 안고 배고픈 예술가의 아내로서 생활고까지 짊어진 그의 아내의 몸은 늦둥이를 임신한 40대 여성으로서 결코 음란하거나 선정적이기는커녕 차라리 슬프기까지 한 가족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언론과 교육청은 '외설'의 굴레를 씌워 두 번째 해직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개그우먼과 미술교사, 이들은 모두 저속한 상업주의의 표적으로 희생양이 된 사례이다. 매스컴이 요란하게 부풀리고 난도질하는 이 사건을 통해 우리의 몸이 자본과 권력통제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실을 자각해야 하겠다. 이와 더불어 크리스천들은 영성의 위기까지 짚어내야 할 것이다. 신체지향사회에서 우리가 방향을 잃지 않으려면,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는(삼상 16:7; 행 10:34; 갈 2:6) 하나님의 시선을 회복해야 한다. 성령의 전(고전 6:19)인 우리의 신체가 자본주의에 의해 상품화되거나 어떠한 권력에 의해 상처입지 않고도 아름답고 온전하게 보전될 때, 비로소 몸의 영성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 이 글은 <기독교 타임즈>(7월 첫주) "카이로스"(시론)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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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8-07 10:21: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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