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눅10:29)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눅10:36)

강도 만난 사람을 구해준 선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복음에만 나옵니다. 누가의 복음서가 로마의 고관인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낸 편지임을 고려하면,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특별히’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야기에 나오는 율법학자는 ‘나의 이웃’이 누구이냐고 묻는데, 예수는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냐고 반문하며 주어를 나에서 강도 만난 사람으로 바꿉니다. 제사장, 레위인처럼 관중이 되지 말고 피해자 입장의 고통에서 문제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의 구도는 간단합니다.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제3자들, 제사장, 레위인, 그리고 사마리아인입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관중으로 남아있었지만,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왔습니다. 이 사건에 참여자가 된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이웃을 찾는 관중들에게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주라고 참여와 실천을 촉구하신 것입니다.

40년 전인 1980년 4월 27일 새벽 5시 경, 계엄군이었던 저는 광주 양림동 오거리를 향해 주택가를 걷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걷고 있었지만 극도의 긴장감으로 온 몸의 감각은 활짝 열려있었고, 그 시각 광주 시민들이 모두 깨어 벽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 이 시민들의 아픔과 고통이 백 년이 가도 치유가 될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광주는 40년 전에 강도를 만났고, 지금까지 폭행당하고 있습니다.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군인이었기에 저는 어쩔 수 없이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책임자는 드러나지 않고 처벌되지 않았으며, 그래서 그 긴 시간 피해자들은 여전히 폭행당하며 고통 받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가해자들이 죄를 고백하지 않아서? 피해자들이 외치지 않아서?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같은 가해자 대 피해자의 구도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강도들과 강도당한 사람만이 있는 구조에서 무슨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해결은 이 둘을 바라보는 제3자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동안 광주를 바라보고 있었던 대다수의 시민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냥 구경꾼으로 남아서 강도들을 도울 것인지, 아니면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사건에 참여할 것인지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40년의 세월이란 전 국민 중 40세 이하의 사람들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직접 경험한 세대들에게도 기억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많은 방송들이 40주년 특집으로 기억을 불러오는 방송을 합니다만, 그렇게 이 사건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릴 수 있습니다.

제3의 지대에 서있는 시민들의 인식이 달라져야합니다. 이 사건은 40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사건입니다. 책임자들이 밝혀지고 처벌받지 않는 한, 그들은 여전히 광주를 폭행하는 것이며, 그 고통 속에 도와달라고 울부짖는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합니다. 나아가 누군가가 하겠지 하며 내가 구경꾼으로 남아있는 한, 나도 똑같은 가해자라는 것을 인식해야합니다. 사마라아인처럼 선한 도움의 손길로 개입할 때 비로소 강도 만난 광주의 이웃이 되는 것이며,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광주만이 아닙니다. 세월호도, 친일청산도, 권력자들에 의해 기획되고 자행된 수많은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방관자로 남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촛불혁명이라는 위대한 시민운동의 승리를 경험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이 홍해바다를 함께 건너며 기적적인 구원의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이 그들의 역사고백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들에게는 전혀 새로운 승리의 경험이며 역사적 고백이 될 경험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의식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국민이 주인이며 시민이 움직이면 바꿀 수 있다는 값진 교훈입니다. 그런 의식의 성숙을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광주도 세월호도 또 많은 정치적 사건들도 이제 각종 위원회를 통해 조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시민들이 함께 움직이고 촉구하고 지지하고 선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합니다. 이제 그만하자는 소리는 피해 당사자들이 해야 합니다. 광주로 상징되는 이 사회의 그늘 속에 있는 약자들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 시민들이 움직일 때 광주의 눈물도 씻겨 질 것입니다. 죄 없이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이 사회의 약자들, 강도 만난 사람들은 우리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들 덕분에 구원을 얻은 우리들이 이제는 그들을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