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정의가 됨으로서 크게 책망 받은 고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모세 혼자서 백성들의 크고 작은 송사를 처리하다 보니 힘에 부쳤습니다. 백성들은 불평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모세는 경륜과 덕망이 있는 사람 가운데 70인을 장로로 선임하고 그들에게 공적인 직무를 맡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합니다. 장로로 선임된 70인 가운데 엘닷과 메닷이라는 자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위임예식장에 나가지 못하고 자기 처소에 있었는데,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내린 것입니다. 소문을 접한 여호수아가 충성심을 발휘합니다. ‘영도자이신 모세여, 저놈들이 제멋대로 하지 못하도록 엄히 금하십시오!’ 모세의 반응이 뜻밖입니다. ‘네가 나를 두고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당신의 영을 모든 백성에게 주시어 다 선지자가 되게 하시기를 원한다’(민 11:28-29). 모세는 여호수아가 두 사람을 시기한다고 하지 않고, ‘나를 시기하느냐’고 되레 여호수아를 나무란 것입니다. 모세의 그릇 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가 측근정치를 하는 사람이었다면 여호수아의 말대로 엘닷과 메닷은 곤죽이 됐을 것입니다. 스스로 정의인 이들은 동료를 적으로 만듭니다.

이 고약한 처신은 예수의 제자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수제자 요한이 여호수아 역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습니다.’(막 9:38). 요한은 여호수아보다 한술 더 떴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래도 모세에게 먼저 여쭸는데, 요한은 아예 묻지도 않고 처리해버린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자기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는 요한을 향해 약자를 낙심케 하여 심판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신체 일부를 잃고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 게 낫다고까지 하십니다. (하태영, 햇순, 2009. 6. ‘내편만 사랑하는 리더십에 대한 경고’에서 인용)

“정대협이 지난 30년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팔아먹었다.” 이용수 할머니의 두 번에 걸친 폭로성 기자회견은 정의기억연대(정대협)와 윤미향 전 이사장에 대한 의혹과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쉼터로 구입했다는 부동산을 납득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사고 팔았다든지, 인척에게 건물 관리를 맡겼다든지, 기부 받은 돈의 입출금 장부가 투명하지 않다든지 하는 의혹들은 사실을 확인하면 될 일입니다. 그보다는 이 문제의 난제를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1990년대 초반, 열악했던 활동시기를 거쳐 2000년 들어 위안부 피해 당사자와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으로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전면에 부각시켰습니다.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에 전시 성폭력을 보편적인 인권문제로 의제화했고, ‘할머니’들은 여성인권운동가로 거듭났습니다. 그 사이 국제사회에서 전후 피해에 대한 한국 시민단체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식민지 희생자인 ‘군 위안부’의 수치심과 고통을 극복하고 국가의 자존감을 찾자는 의식이 고양되었습니다. 위안부 운동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2015년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쌍방이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는 ‘불가역적 합의’ 이후부터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위안부 운동이 초기 소수 사람들의 순수했던 열정과 달리 시민 대중의 관심과 국가의 지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운동의 중심인물들과 조직은 스스로 정의가 되고, 권력이 되고, 직업이 됨으로써, 이용수 할머니의 표현 가운데서 읽혀지는 것처럼-정작 ‘할머니들’은 위안부 운동의 소재로만 취급된 게 아닌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30여년에 걸친 위안부운동은 장관(지은희) 또는 국회(이미경)로 진출하는 통로가 되었고, 윤미향 전 이사장 역시 제21대 국회의원이 됨으로서, 그때마다 내부의 역학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함께 일했던 동료 간에는 배제와 차별의 논리가 작동되고, 마침내 내부 갈등이 폭발한 꼴이 된 것입니다. 물론 위안부 운동을 훼방하려는 이들의 집요한 음모를 간과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겸양과 자기 성찰을 모르는 정의는 불의 못지않게 위험합니다. 예수께서 가장 싫어하신 게 위선적인 정의입니다. 다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성공했으나 무능함, 탐욕, 독선, 권력지향, 자기 신비화로 인해 사탄에게 기회를 내준 혁명이 부지기수입니다. 우리 시대에 정의를 앞세워 권력이 된 이들은 유념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