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의 뜨락 (2000. 7)
에니어그램 영성 훈련기(記)
박옥배
들어가며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리라는 기대를 안고 2000년 5월 29일부터 6월 1 일까지 경기도 의왕시 '성 라자로마을-아론의 집'에서 열린 기독교방송직원 영성훈련에 참여했다. 공동체성서연구원이 미리 보내준 영성훈련자료에 밝힌대로 대침묵으로 진행되는 수련을 통해 하나 님을 만나리라는 기대가 3박 4일간 침묵수련에 응하게 한 것이다. 그동안 마이크 앞에 수 없는 말 을 밥 먹듯이 쏟아내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 여보자는 뜻이 크게 작용한 탓도 있다. 다만 식사도 묵식이요, 휴식도 침묵이며 공중전화와 휴대전 화는 물론 TV와 인터넷도 없이 지낼 나흘간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게 다가 말의 홍수속에 소리중독자로 살아온 제 자신을 돌아보다가 태초부터 있어 온 하나님의 진리 말씀이 문득 나를 깨우치고 흔들어 깨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역시 나를 두렵고 떨리게 하 기는 마찬가지였다.
영성의 길, 함께 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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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간의 영성훈련에 던져진 화두는 중생, 즉 거듭남이란 내게 무엇인가이다. 지금의 '나'는 누구 인지를 직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설령 나를 안다고 해도 도대체 나와 하나님의 관계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 온전함의 영성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안고 침묵수련은 시 작됐다. 과연 '나'라는 존재를 나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내가 '나'에 대한 지식의 정도는 어느 정도나 정확한가? 탯줄을 끊고 독립된 개체로 태어난 이후 내가 갖고 있는 욕망과 공포는 무엇이 며 완성된 인격으로 나아가는데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 이래 성인들에게도 걸려 넘어질만한 것들이 많았다는데 하물며 범인에 속한 내게는 그런 장애물이 없겠는가? 수 없는 질문 앞에 섰다. 중생의 체험을 새롭게 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김영운목사님이 제시하는 에니어그램(Enneagram)의 영성에 접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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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9가지 인성유형중 자신의 인성유형을 깨달아 완성된 인격체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먼 저 결정적인 자기결함을 확인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른바 '나는 곧 죄인'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자아를 발견, 확인한 다음 그 결함을 포기, 방출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수련생중 4∼6명씩 작은 공동체로 나뉘어 각자 자기만의 원초적인 결함을 찾아 나섰다. 성격유형이 확정된다는 0∼6세 에 경험했던 '난생 처음 받은 상처', 특히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들이 하나 둘씩 쏟아져 나왔다. 동 생의 죽음, 장애인 형제의 행방불명에 따른 부모의 충격, 할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에 눌린 부권의 추락, 이웃집 부부싸움의 충격 등 케케묵은 상처들이 마음 밖으로 쏟아질 때마다 서로를 위로하며 격려했다. 자기를 발견하는 단초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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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가지 인성유형별로 과거나 현재의 상태, 미래의 가능성까지 서술된 20개 항목의 질문에 따라 평 점기록표를 작성했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인성유형이 명확하게 드러나기도 했고 어떤 이는 더 욱 혼란스러움에 빠지기도 했으나 질문사항을 재확인하고 에니어그램 성격발달단계, 에니어그램의 변화 등을 통해 자신의 인성유형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을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객관화된 자 료검증을 통해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으며 특히 자기발견 과정에서 '난생 처음 받은 상처'를 내보이며 자기를 연다는 것이 미묘한 감정 때문에 닫힐 수도 있었지만 오(誤)도 되지 않은 자기발견이라는 목적 외에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도를 한층 높이는 부수적 결과를 얻는데 큰 역할 을 했다. 물론 이것이 에니어그램 영성의 중요한 영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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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어그램의 영성훈련과정을 거치면서 나 자신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고 변화과정을 통해 완성된 인격체로 거듭나는 목적달성 외에도 다른 사람의 인성유형 파악이 결국 '나와 타인'의 관계가 '틀 림(誤)'이 아닌 '다름(異)'일 뿐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한 것이 부수적 유익 중에 가장 큰 것으로 꼽 을 수 있겠다. 무지개는 일곱 색깔이 모여 아름다운 것이지 각자 다른 색깔 하나만으로는 그만한 아름다움에 이르지 못한다는 평범한 진리발견이 있었던 셈이다. 에니어그램의 9가지 인성유형에 대한 바른 이해로 자신과 다른 8가지 유형의 건강성을 가지려고 노력할 때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오며
보이지 않는 감옥에 자신을 가두고 있는 것들, 강박충동이나 공포, 유혹, 선악의 문제들을 훌훌털 어버리는 것은 말 처럼 그리 쉽지 않았다. 묵은 것들에 대한 상처가 준 악순환의 고리를 자기확인 과정에서 과감히 끊어내고 앞으로 닥칠 문제에 대한 직관력을 높여 스스로 해결능력을 찾아 낸다 는 것이 간단하지만은 않다. 다만 자신의 에니어그램을 확인하고 틀린(誤)게 아니라 다를(異) 뿐인 9가지 인성유형의 사람들을 어떻게 섬기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를 것인가를 생각 하며 더 나아가 이로써 얻은 자유와 해방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영성회복의 좋은 결과가 아니겠는가. 9가지 인성유형중 어느 하나로 획일화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인성유형을 지 닌 채 영성의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이 곧 온전함의 영성을 갖춘 자요, 중생한 그리스도인이라 믿 는다. 9가지 인성유형을 이해하고 자신의 인성유형을 확인함으로써 자유를 얻게 하는 에니어그램의 영성을 소개해 주신 공동체성서연구원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침묵수련과정에 동참해 주신 여러 수련생들도 이런 내적 치유의 경험이 다른 인성유형의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를 증진시켜 조 직이나 사회, 가족 구성원간의 갈등구조를 풀어가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기대한다.
* 박옥배(광주 기독교방송 아나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