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의 뜨락 (2001. 7)
전도사와 성(性)역할
이종민
금요일 오전이면 어김없이 시작하게 마련이다. 왠지 몸이 시원치 않은 게 한쪽 가슴이 답답한 것이 뭔가 체한 듯 소화도 안된다. 더 무서운건 괜히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고 뭘 해도 재미도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눈치 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금요병'이다. 현대인들이 '월요병'을 가지고 있다면 전도사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찾아 온 약도 없는 중증의 병명이다. 이 왠 불경건한 병명인가? 기쁘게 주님 의 날을 준비하고 주일성서를 묵상하며, 말씀전할 사명으로 들떠있어도 시원찮을 마당에 말이다. 그런데 그건 내 머릿속 생각 얘기고 내 몸은 또 자동적으로 금요일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이쯤되면 내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볼만 한데 다행히도 나만 앓는 병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속 해 있는 신학대학원(성직준비과정)에 사람들도 딴 날과 달리 안색이 변 하는게 경중은 있지만 이 병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도대체 그 원인이 무얼까? 약은 없는 걸까?
평생을 교회를 위해 헌신하리라, 그것도 모자라 새로운 교회에 대한 비젼과 하느님일에 대한 사명, 각자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배우고 기도하 기 위해 큰 결심하고 이곳에 도착한 사람들이 금요일 날 교회 갈 걱정 에 배앓이나 하고 있다면 문제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시다바리'라는 유행어가 퍼지기 전에도 사람들은 내심 그러한 불만이 있었다. 거창한 신학사상과, 다양한 외국어, 선교와 사회적 정의 거창한 담론들과 토론 그리고 하느님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모두 거침이 없 다.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소신을 이제 곧 세상에 나가 전할 듯이 정열 을 불태우기도 한다. 그런데 당장 토요일 오전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은 빗자루 한자루이다. 구석구석 청소하고 주보를 접고, 성찬식 준비하 고, 눈오는 날은 눈 쓸고, 차가 더러워지면 세차하고, 교회 수리하고, 물 품 챙겨놓고, 운전하고, 우편물 관리하고 그 외 한 주 한 주 특별한 계 획이라도 있을라치면 목회자의 계획과 동선에 따라 빈틈없이 준비해 놓 아야 하고 그렇게 '누구나'할 수 있지만 '누구도'하지 않는 일을 하느라 전도사는 눈코 뜰새 없다. 물론 그러한 일에서 보람과 자부심을 찾을 때 도 있다. 그리고 봉사와 헌신의 자세라면 그다지 문제 될 것도 없다. 도 를 배우기 위해 수년간의 고된 행자생활을 감수하던 선인들을 기억하면 서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는 다른 한가지 이 유를 발견했다. 돌이켜보면 집에서 그런 일을 배운 기억이 없다. 그러한 살림과 잡일은 몽땅 어머니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그 집안의 가장이요, 돈 벌어 먹여 살리는 이요, 어머니는 아무 댓가없이 그 아버지의 시중과 자식들의 시중, 그리고 집안관리와 살림의 책임을 두루 맡고 계셨던 것 이다. 귀하게 '아들'로 자란 내가 그런 걸 배울 턱이 없었던 것이다. 남 자는 집안에 소소한 일을 신경쓰지 않는 법이니라, 더 큰 세상을 꿈꾸 며... 우리 남자들은 다 그렇게 배우지 않았던가? 가끔 아버지는 어머니 에게 '애들 교육은 어떻게 시키는 거야?' 한마디 하며 신문을 접기나 하 면 되는 것이다.
근대 산업사회는 자유로운 남성들의 노동력을 얻어내기 위해 가정내 에서 여성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했다. 그 여성들에게 있어서는 언제나 직업란에 '무직'이라고 적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들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가족은 자본주의 사회를 위해 충실히 복무해왔던 것이다. 이제 그러한 시대는 갔다. 여성들의, 가족들의 지위와 개념자체가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회는 그렇지 않다. 폼나게 목회하는 목회자 아버 지 뒤에는 늘 그의 뒷살림을 맡고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집에서 평등한 교육, 올바른 가족간의 성(性)역할에 대해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그러면서 언제나 폼나는 목회자만을 꿈꾸는 내가 그 '시다바리'역할을 하려니 힘들지 아니한가? 이 땅에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부끄러울 따름 이다.
* 이종민님은 현재 성공회 신학대학원 재학중이고, 광명교회 전도사로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