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삶의 뜨락 (2001. 10)
가난한 마을에 스며들기
박은영
자유는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자기와의 싸움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언제나 벅찬 그 자유... 내게 있어 진정한 자유는 나눔의 집에 스며든 그 이후인 것 같다. 스물 아홉해를 지나오고 있는 지금..
"나이서른에 우린 어디에 있을까~~"하며 노래를 부를 때만 해도 머얼 것 같더니, 냉큼 성큼 코앞으로 와버렸다.
내가 있는 이 곳, 나눔의 집은 아주 전망이 좋다. 하늘하고 가장 가깝게 닿아 있어 땅 밑의 거만한 집들도 눈 내리깔고 바라볼 수 있다. 내가 나눔의 집에 스며든 건 아니, 하느님께서 나를 나눔의 집으로 이끌어 내신 것은 아마 그렇게 될 일이었는지 모른다. 늘 하나님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면서, "알았어요. 알았다니깐요. 곧 간다니까요. 기다려보세요.." 하며 감히 내가 곧 하나님을 선택하리란 자만을 떨던 나를 이미 하나님은 선택하시고 - 나눔의 집으로 이끄신 것이었다.
이때부터 나에겐 가난한 이웃들이 생겨났다. 못 생긴아이, 더 이쁜아이, 누가 안보면 꼴밤 매기고 싶은 아이, 어지간히도 먹을 것 밝히는 아이, 징그럽게도 말 안 듣는 아이, 꼬질꼬질 참말로 지저분해서 닦아주면서도 짜증나는 아이... 결혼도 안한 나에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공부방 아이들이 생겨났고, "부잣집 맏며느리여. 처녀 참 잘생겼네..." 하며 거친 손으로 따스히 보듬어 주는 할머니들도 생겼다.
나는 아주 우습게도 '내가 그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러' 나눔의 집으로 들어간 것이라 착각을 하고 살고 있었다. 내게 생긴 이웃들은 가난하고, 이기적이고, 뻔뻔하고, 싸움 잘하고, 희망결핍증에 악다구니치고, 정 많고, 소박한 미소를 지녔고, 조금 가진 것도 움켜쥐지 않고 선뜻 나눠주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3년 동안 얻은 것은 내 이웃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결코 내가 무엇을 해주는 사람이라 아니라 더불어 그 안에 스며들어 살아가는 방법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눔의 집에서 일한다" 라고 하지 않고 "나눔의 집에 스며들었다"라고 한다.
우리공부방 꼬마들 중 한 녀석이 있다. 이 녀석은 공부도 잘하고 재능도 다양하다.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녀석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감과 아빠인 것 같았다. 글쓰기 시간에 녀석의 아버지는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미국으로 돈벌러 간 아빠로 그리기도 하고 도둑을 잡다가 순직한 훌륭한 경찰아저씨의 아빠를 그리기도 한다. 나는 언제나 녀석을 보면 마음이 싸~ 해짐을 느낀다. 맘속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우리꼬맹이들이 밝고 건강하게..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살아 살 줄 아는 맘 뜨듯한 사람되라고.. 바라고 바란다. 어느새 나는 나의 가난한 이웃들을 사랑해 버렸다.
그들의 사랑도 내가 과분하게 나누어 받았다. 오늘도 생각한다 하나님이 나를 여기로 이끄신 그 깊고도 넓고도 광활한 뜻을.
그리고 다짐한다. 항상 처음처럼.. 욕심부리지 말고.. 얻은 떡 하나 이웃과 맘 편히 나눠먹는 그런 삶을 살아가자고..
* 박은영 : 인천 송림동 나눔의 집에서 삼년째 가난한 이웃 속에 스며들어 살고 계신 박은영 님은 따뜻한 마음과 나눔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우리들의 이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