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선
나의 할아버지 윤형규 안수집사는 3.1 운동때 독립만세를 부르다 투옥되셨고 교회를 지키다 돌 아가셨다. 아버지는 당신이 아홉살 때 우리 집 뒤주에서 태극기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나 는 그 집에서 태어나 해방될 때까지 살았다.
우리 식구들이 다니던 교회는 손양원 목사의 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이다. 어렸을적 할머니로부 터 "사랑의 원자탄" 얘기를 늘 듣고 자랐다. 우리 어머니 주영순 권사의 삼촌은 그 유명한 주기 철 목사이다. 부모님들부터 순교의 어려움에 대한 애기를 들으면서 어린시절의 나는 일본과 공산 당을 미워하는 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것인 줄 알았다. 만화나 동화에 일본 사람이 나오면 콤파스 로 눈을 콕콕 찌르기도 하였다. 물론 일본인 친구는 만들지도 않았고 해외여행을 가면서도 일본 에는 가지도 않았었다. 그러던 나에게 일본인이 다가왔다.
스즈끼 레이꼬.
그는 이번에 일본 NCC의 회장이 되었다. 1992년도에 일본 YWCA의 총무로써 일곱 명의 회원
과 함께 한국 YWCA에 연구 여행을 왔었다. 일본군인들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 정신대 할머니들
의 상황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이다. 그때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조직되기 전이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인데 일제시대 때에 이미 "일본은 하나님과 한국에게 회개해야 된다"고 설 교를 하셨다고 한다. 스즈끼 목사님은 일본순사의 감시의 대상으로 집안은 늘 수색을 당하였고 책장 뒤에 감추어 놓고 읽으시던 책이 많았다고 한다.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 살던 두 후손이 만났는데 알고 보니 스즈끼 레이꼬는 젊은 청년 시절부 터 원자폭탄을 맞은 한국인들이나, 정신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평화운동을 해 오고 있었다. 영어 를 잘하는 그가 영어로 편지를 보내오거나 카드를 보내왔는데도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일본 말은 물론 영어도 잘못하지만 일본인과 편지교환조차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끊임없이 나에게 관심을 보내 왔다. 작년에는 휴가를 한국으로 왔는데 사흘동안 우리 집에서 같 이 자기도 하고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하였다. 하나님 나라는 일본과 한국의 경계선이 없다는 것 을 깨닫게 해준 여행이었다.
그리고 지난 3월 말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아시아기독교여성문화원에서 개최하는 한촵일촵재일 여성신학자들의 포럼이 있었는데 이 모임은 10년 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계속되어온 모임이 지만 내가 일본에 간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그 곳의 여신도들, 특히 여 목사들의 재일 동포들에 대한 사랑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한국인보다 더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며 살고 있었다. 일본의 신 가이드라인에 반대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또한 순교 당하고 있는 생활이 비춰지고 있었다. 저녁 상에 같이 둘러 앉은 일 본인, 재일동포, 한국인 자매들은 한 하나님의 딸들이라는 것과 자매들의 사랑이 나라의 경계선을 허물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함께 서둘러야 할 일꾼임을 다짐하게 되었 다. 정치로도, 경제로도, 또한 문화로도 깰 수 없는 벽을 하나님 사랑으로 깰 수 있는 자매들의 사랑이 여기 있기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될 것을 기대해 본다.
* 윤명선 (공동체문화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