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현 자
2003년 2월은 5년 임기의 노무현 대통령의 새 정부가 출범하는 달이다. 지난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스스로가 놀래고 세계가 놀라는 선택을 했다. 지금 새 정부를 맞는 국민들의 마음은 기대와 희망, 우려와 불안이 교차되는 착잡한 상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솔직히 나를 포함하여 많은 중 장년 층 사람들은 노 대통령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다. 그는 현역 국회의원도 아니고 당의 중진도 아니었다. 5공 청문회 때의 스타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6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의 국민 경선이라는 어려운 첫 관문을 극적으로 돌파하더니 아슬아슬한 고비마다 특유의 설득력과 호소력으로 정면돌파를 시도했고 또 성공했다.
그의 당선을 놓고 학계와 언론 등 각계에서 평가와 분석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는 우선 낡은 정치 청산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파악하고 ‘변화와 개혁’의 메시지를 던졌다. 또 원칙과 소신이 있는 비주류정치인의 이미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잘 활용했다. 선거운동 방식이 종전의 대중집회와 조직 선거에서 미디어 선거로 이동한 것도 승리의 큰 요인이 되었다. 특히 2030으로 일컬어지는 인터넷 세대의 지지와 선거참여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했다.
국민들은 21세기 첫 대통령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에 기대를 걸고 있다. 독선적이고 제왕적 대통령이 아닌 친근한 이웃과 같은 지도자, 국민의 뜻을 존중하고 다양한 의견을 조정하여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민주적 지도자를 원한다. 동시에 국민 중에는 아직도 대미. 대북과 관련, 의구심을 갖고 새 정부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상당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패척결과 함께 지역간, 세대간, 이념간의 갈등을 해소하여 국민통합을 이루는 일이다.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도 국민적 합의의 토대 위에서만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노 후보의 당선이 여성들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져다 줄까. 요즘 여성계 일각에서 노 후보의 당선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견해를 내놓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정치 비주류’인 노무현의 당선은 ‘사회 비주류’인 여성의 진출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한 여성사회학자는 “노 당선자의 정치역정이 남성과 가부장적 사회라는 훼방꾼이 만든 갖가지 덫을 피해 지금까지 나온 여성의 역사와 빼 닮았다”고 말하였다.
대통령은 선거기간 중 호주제도의 폐지, 여성의 정치. 공직참여 여건의 확충, 여성복지의 향상과 일자리 창출 등 여러 가지 여성정책을 내 놓았다. 그러나 이런 공약은 과거에도 많이 나오던 말이어서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우리는 다만 과연 여성공약과 그 밖의 공약들을 실천할 의지가 집권자에게 있는가를 주목하고 감시할 것이다.
새 대통령은 인구가 감소추세에 있고 고령화되고 있는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여성인력 활용은 국제적 경쟁력을 위한 필수요소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기를 바란다. 정치인들은 말로는 여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막상 책임 있는 자리를 임명할 때는 여성의 존재를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우선 이번의 정권인수위원회 임명에서도 그러했다. 세계은행은 “여성과 남성의 권리가 동등한 국가가 높은 경제성장을 누리며 부패율도 낮다”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바 있다. 여성은 이제 비주류가 아닌 주류로서 21세기의 진정한 여성시대를 열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며 특유의 섬세함, 유연성, 성실성으로 건강한 사회, 모든 사람이 존중되는 정의사회를 만드는 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 김 현 자 (YWCA 명예연합위원, 전 국회의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