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 염
지난 2003년 2월 15일 ‘국제 공동 반전의 날’에 전 세계적으로 7백여 도시에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1천만 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국에서도 이 날 대학로에서 5천여 명이 반전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반전운동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작년 9월 28일 제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 기념일에 영국 런던에서 40만 명이 이라크전쟁 반대시위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10월 26일 미국 전역에서 20만 명이 반전시위를 했고, 11월 10일 1백만 명의 반전시위대의 물결이 이탈리아 40만 명의 작은 도시 피렌체를 뒤덮었다. 이후 각 나라로 이 운동이 전개되어 2월 15일 국제 공동 반전의 날 행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이 반전평화운동은 미국이 전쟁각본을 취소하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런 반전운동을 일부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반전운동을 곧바로 반미운동으로 직결시키면서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미국의 미움을 사서 어떻게 하겠느냐는 항의를 한다. 또한 이라크 전의 다음 단계인 북한의 핵문제와 연결시켜서 반전운동을 북한 핵개발을 찬성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미국은 기회만 되면 주한 미군을 철수하려고 하는데 그들에게 철수의 명분을 주어서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후방 배치하게 되면, 우수한 군사력을 가진 북한이 우리나라를 침범하게 된다는 논리다. 그리고 당장 북한이 침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전쟁위험으로 인해 해외투자가나 국내 자본가들이 투자심리가 위축되어 우리 경제가 심각하게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도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이 정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힘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9.11 테러로 미국의 보험회사가 입은 손해가 600억불이고, 그 보복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퍼부은 무기와 물자가 무려 9백억 불이니 도합 일천 오백 억 불의 손실을 어디서 만회할 수 있는가? 이라크에 전쟁을 일으켜서 석유 독점권을 10년 간 확보하면 2000억불의 이익이 생기니까 그걸로 손실을 메운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혹은 미국이 재래식 무기를 쏟아 붓고 신종무기 연습도 해야 하니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 아니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라고, 이미 이라크 전을 위해 16만 대군을 배치해놓았는데 그걸 어떻게 되돌리겠느냐, 터질 전쟁이라면 불안감만 가속시키지 말고 빨리 터졌으면 좋겠다고, 전쟁을 기정 사실화한다. 이라크에서 죄 없는 민중이 죽든 말든 관심이 없는 이런 사고방식을 접하면서 새삼 폭력에 무감감함에 놀라게 된다.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이다. 이 계절에 우리가 특별히 전쟁으로 인한 민중의 고난 문제와 평화에 관심을 갖는 것은 전쟁이 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제의 침략전쟁으로, 민족 분단이 갖고 온 한국전쟁으로, 베트남에 가한 전쟁 폭력을 통해서, 전쟁의 피해자로서 그리고 가해자로서의 아픔을 경험한 백성들이다. 백성들의 복지로 써야 할 국가 예산을 제 백성 죽이는 무기를 사고 만드는데 사용하고, 미국의 전쟁 연습 터가 되어버린 한반도에서 대인지뢰 사고로 죽거나 부상당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이런 상시적인 긴장감말고도 9.11 테러와 관련한 보복전쟁과 이라크 전쟁은 우리를 더욱 긴장시킨다. 부시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전쟁 대상국가로 선정, 어제는 아프가니스탄, 오늘은 이라크, 내일은 북한이라는 미국의 전쟁시나리오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북한의 핵개발 문제로 인해 간신히 이루어진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무산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런 반평화의 때를 보면서 전쟁의 참화로 특별히 어린이와 여성들이 당하는 기아와 성폭력 등 고통을 생각하게 된다. 전쟁은 모든 삶을 앗아감은 물론, 전쟁에 의해 민중의 삶이 뿌리 채 뽑혀진다. 특히 모성성을 갖고 있는 여성들의 고난을 가중시킨다. 여성이 일으키지도 않은 전쟁에 의해 여성을 인간이 아니라, 성적 노획물로, 노리개로 전락시키고 성폭력 피해자로, 매춘으로 내 몬다. 뿐만 아니라 생계부담 등 전쟁의 뒷바라지와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여성의 짐으로 부과된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이미 역사를 통해서 경험하고 있다. 일제의 침략전쟁시 주권이 상실 당해 일어난 정신대 여성들의 고난, 우리의 만행과 무관심으로 자녀를 위해 우는 베트남 여성들의 울음소리, 9.11테러와 그에 이은 보복전쟁으로 그나마 폐허가 된 조국을 버리고 피난민이 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비명, 분단의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한반도 여성들의 신음소리, 전쟁 앞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이라크의 여성들과 어린이들, 이들의 신음소리를 우리는 듣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 “‘임신을 하지 못하는 여인과, 아기를 낳아보지 못한 태와, 젖을 먹여본 적이 없는 가슴이 복되다’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이 산에다 대고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 하며, 언덕에다 대고 ‘우리를 덮어버려라’ 하고 말할 것이다”하신 말씀이 현실임을 듣는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길목에서 여인들을 만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하신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됨을 듣는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면서, 그들의 아픔과 통곡소리가 이라크에서, 북한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 글을 소개한다.
누가복음 23장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소리 그래요, 우리는 마지못해 살고 있지요. 죽지 못해 산다고, 그렇게 무덤 속처럼 암울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랜 내전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버려진 아프가니스탄의 땅, 9.11테러의 보복이라며 미군들이 퍼붓는 포탄을 피해 파카스탄 국경으로 피난을 떠났지요. 먹지 못해 말라붙은 내 빈 젖을 빨다 지친 두 살 난 딸아이는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한 채 점점 쪼그라들었습니다. 남편과 11살 된 아들아이는 전쟁터로 나가 소식 끊긴지 오래고, 난민에게 주는 구호품을 얻으러 갔던 15살 먹은 딸은 몸을 바치라는 배급원의 요구를 거절해서 식량도 못타고 돌아왔습니다. 어제 저녁, 마침내 내 두 살짜리 딸이 죽어버렸습니다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제 구실 하기 어려운 터 오히려 잘되었는지도 모르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어딘지도 모르는 폐허의 한 모퉁이에 딸의 주검을 묻었습니다. 아니, 나는 딸을 땅에 묻지 않았습니다 내 가슴에 묻었습니다. |
* 한 국 염 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 한국기독교장로회 청암교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