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현 자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가정에 큰 경종이 울리고 있다. 최근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지난 해 매일 840쌍이 결혼하고, 398쌍 꼴로 갈라섰다. 지난 10년 사이 이혼건수가 3배나 는 것도 놀랍지만 20년 이상 부부생활을 한 뒤에 갈라지는 ‘황혼이혼’이 3300건에서 2만2800건으로 7배나 증가한 것은 적지 않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이미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말도 있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이혼에서 제일 큰 상처를 받는 것은 말 할 것도 없이 자녀들이다. 왜 우리의 가정이 이렇게 붕괴되고 있는 것일까.
연 전에 ‘남자가 변해야 남자가 산다’ 라는 책을 읽은 일이 있다. 30년 이상 전문적으로 가정상담을 한 분이 엮은 상담사례집이다. 그는 중년남성이 가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급기야 아내로부터 이혼을 당하는 것은 남편이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 말에 전적으로 수긍이 간다. 한국은 오래 동안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사회이다. 지금도 여필종부, 삼종지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자는 하늘이고 떠받들어야 할 존재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
급격한 산업발전과 여성교육기회의 확장은 여자의 지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성 차별적인 법과 제도가 사라지면서 여성들은 잠재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남성과 어깨를 겨누어 활동하고 있다. 여성장군이 나오는가 하면 남자의 영역으로 여겨진 법무부에 여자가 장관으로 임명되는 세상이 되었다. 여성들은 자아실현을 위해, 또는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밖에 나가 활동하기 시작했다. 경제력을 갖게 된 여성이 당당해진 반면 고개 숙인 남자가 늘어났다.
남자들이 이렇게 힘들어진 것은 여자들이 재빨리 사회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위치를 찾아나가는 데 반해 남자는 가장으로 군림하는 가부장적 의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2, 30년 간 여자들은 여성단체 등을 통해 가정과 직업의 양립, 여성의 새로운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연구하면서 변화에 적응하는 노력을 한데 비해 남자들은 구태의연한 남녀역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가정을 등한시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말에 길들여져 미국에 이민 와서도 힘든 아내를 제대로 돕지 않아 아내로부터 이혼 당하는 남자도 있다. 아내가 일 때문에 귀가가 늦는 것도 의심하며 아내가 벌어오는 돈이 가정에서 큰 몫을 차지하는 데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 인색하다. 아침 일직 나가고 밤늦게 돌아오는 아빠는 아이들과 놀아주고 대화를 할 시간이 없다. IMF와 경제불황으로 직장을 잃은 남자는 그 화풀이를 집에서 한다. 전에는 여자가 아이들 때문에 참고 견디었지만 지금은 참지 않는다. 아빠가 술 마시고 들어와 무조건 엄마를 때리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 자녀들은 호소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한 쪽에서는 남편 기 살려주기, 고개 숙인 아버지 권위 살려주기를 주장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나는 가정이 사는 길은 부부가 함께 변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수직적인 상하의 관계에서 민주적인, 평등한 부부관계가 될 때 가정이 산다. 일방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군림하는 태도는 바꿔야 한다. 여자 또한 자유가 주어졌다고 채팅에 빠지고 탈선을 하는 것은 용납 될 수 없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상호신뢰가 절대 필요하다. 평등하다는 것은 모든 일을 똑같이 하고 모든 것을 똑같이 소유하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안는 것을 포함한다. 여자도 자아실현의 욕구와 갈망이 있음을 인정하고 아내가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는 것을 말한다. 경쟁사회에서 지치고 낙오한 남편을 따뜻하게 격려하고 감싸안는 사랑을 의미한다. 한쪽이 약하고 힘들 때는 다른 쪽이 좀 더 큰짐을 나누어지고 모자란 것을 서로 보완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공동체 성서연구원이 주최하는 에니어그램 영성수련이나 상담소가 주최하는 부부캠프에 함께 참석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부가 변해야 가정이 산다. 가정이 살아야 나라가 평안하다. 건강한 가정은 건강한 사회의 기초가 된다. 세계의 평화도 가정의 평화에서 시작된다.
* 김현자 YWCA명예연합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