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저는 두 가지 문제로 생각이 좀 번거롭습니다. Ⅰ. 요즘 우리 교회에서 사용하는 [찬송가] (한국찬공가공회, 2010) 표지 안쪽 지면에 나오는 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을 보다가 믿을 수 없는 기록이 있습니다.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라는 대목에서 “장사된 지”에 붙어 있는 각주에 <“장사되시어 지옥에 내려가신 지”가 공인된 원문 Forma Recepta에는 있으나 대다수의 본문에는 없다.>라는 설명이 있는 겁니다. 원문에 있는데, 왜 번역에는 반영시키지 않습니까? 우리말 번역만 그런 겁니까? 다른 언어 번역도 그런 겁니까? 원문대로 고백된 번역은 없는 겁니까? Ⅱ. 드디어 저에게 이 문제가 다시 한 번 문제가 불거져 나왔습니다. 지난 2월 18일 사순절 첫째 주일 성서일과에서 사도서신 베드로전서 3:18-22를 교인들이 함께 읽었습니다. 무심코 저도 함께 같이 읽었습니다. 19절에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개정] 벧전 3:19) 이런 말씀이 있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잘 몰라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설교 시간에 설교자는 여기 “옥 獄”은 죄수를 가두어 두는 “감옥 監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 받을 죽은 영혼들이 가는 “지옥/地獄, HELL”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죽으시고 장사되어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사도신경 라틴어 원문이 맞는 말이 아닌가! 예수께서도 지옥에 가시다니! 지옥은 영원히 형벌 받을 죄인들만 가는 데가 아니었나요? 지옥에 내려가신 예수께서 지옥에서 뭘 선포하셨다고 했는데요, 우리 설교자는 이번에는 벧전 4:6을 인용하시면서 예수께서 지옥에서 그 영들에게 “복음”을 설교하셨다는 겁니다. 저는 60평생 교회 다니면서도 이런 설교 처음 들어 보았습니다.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 [그 죽은 자들이]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개정] 벧전 4:6). 성경을 그렇게 여러 번 통독했어도 이런 본문이 성경에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건성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어떡하면 좋습니까? 이 말을 믿어야 됩니까? 왜 평생 교회 다녀도 이 말을 오늘에서야 처음 듣습니까? 이름 밝히기 죄송한 어느 장로 드림

언 彦 장로님께,

‘이름 밝히기 죄송’하다고 ‘어느 장로’라고 하시니까, 제가 ‘언 彦 장로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설교자들끼리는 가끔 청중이 무섭다고 말하곤 합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교인들은 설교를 하도 많이 들어서, 상식 常識 수준의 어지간한 설교에는 식상 食傷해 버려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설교자의 설교는 닳아빠진 상투어가 되어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겁니다.

(2) 청중이 바뀔 때마다 같은 한 설교를 여러 곳에서 여러 번 하게 되는데,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이런 설교가 떠버리기 때문에 김이 빠진 설교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3) 때로는 설교자마저 이러저런 말이나 예화를 자기 청중에게 했었는지 안 했는지 헷갈리는데 설교를 들었던 신도들 중에는 그런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있어서 동일한 내용이 반복될 때는 퍽 난처하게 된다는 겁니다.

(4) 한 교회 강단에서 10년 20년, 아니 30년을 설교를 해도 설교자가 인용하는 성경 본문은 기껏 수 백 곳, 2천 절 미만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66권, 1,189장, 7,941절인데, 설교에 활용된 본문은 20%가 될까 말까합니다. 설교 본문으로 선정되어 보지 못한 본문이 90%가 된다고 가정해보면 아찔합니다.

그런데, 언 장로님께 갑자기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질문 내용을 듣고 보니, 이미 대답은 나와 있고, 제가 따로 더 보탤 말은 없고, 또 언 장로님께서는, 개화기에 번역된 [개역](1900, 1911, 1938, 1961)이나 그것을 약간 개정한 [개정판](1998) 성경을 읽으시면서 내용이 조금 잘 안 되었다고 해서 죄송해 하실 까닭이 전혀 없다는 말씀도 아울러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언 장로님 주변에서 지금 크나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제가 언 장로님의 질문 내용을 보면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크나큰 변화”라는 것이 바로 다름 아닌, 교회력을 따라 그 주일의 성서일과 네 본문을 읽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왜 큰 변화냐 하면요,

1) 이제부터 교인들은 예배 시간에 설교자의 기호에 맞추어 선택된 제한된 성경 본문만을 읽게 되는 것에서 떠나, 3년 터울로 성경전서 전체 본문을 거의 다 읽게 된다는 것입니다.

2) 뿐만 아니라 설교가 구원 역사의 구조에 따라 선포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청중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진 편식 偏食의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Ⅰ. 사도신경 번역 문제는 성경 번역 문제가 아니지만, 사도신경과 관련된 성경본문의 문제를 함께 물어주셨기 때문에 답변을 드립니다.

라틴어 원문 사도신경 CREDO에는 “descendit ad inferos”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지옥으로 내려가셨다”입니다. 영국성공회의 사도신경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사도신경에는 “He descended into hell” 곧 “그는 [예수는] 지옥으로 내려가셨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톨릭과 성공회와 개신교가 다같이 “지옥”이라는 용어를 기피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 He descended into hell. On the third day he rose again.”라고 번역합니다만, 함께 병기된 영어 번역에서는 “지옥으로 내려가시고 / He sescended into hell”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성공회 聖公會에서는 “죽음의 세계에 내려가시어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라고 번역합니다만, 함께 병기된 영어 번역에서는 “지옥으로 내려가시고 / He sescended into hell”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교장로회(통합)에서는 장로님께서도 이미 지적하신 바와 같이 “장사된 지”에 붙은 각주는 공인된 원문 Forma Recepta에는 “장사되시어 지옥에 내려가신 지”라고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Ⅱ. “그가 또한 영 靈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 靈-에게 선포하시니라”([개정] 벧전 3:19). 이 본문에 대한 관심을, 예수께서 언제 지옥에 내려가셨었는지, 예수께서 만나신 “옥에 갇힌 영들”은 누구였는지, 그리고 무슨 내용을 선포하셨는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1)

1. 예수께서는 언제 지옥에 내려가셨는가? 주석들을 종합해 보면 세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1) 베들레헴에서 탄생하기 이전 선재 先在하신 그리스도 / the pre-existent Christ로 계시는 동안,
2) 십자가 처형 후 숨을 거두신 다음부터 사흘 후 부활하시기 직전 사이,
3) 부활 이후 승천 사이 혹은 승천 이후 어느 때. 두 번째 견해가 벧전 3:18-20의 문맥과 일치한다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2. 옥에 갇힌 영들은 누구인가? 주석들이 언급하는 견해를 보면 네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1) 창 6:1-4에 언급된 타락한 천사들,
2) 노아 당대의 사람들,
3) 천사 일반,
4) 타락한 천사들과 노아 당대의 불순종했던 사람들. “옥에 갇힌 영들”은 두 번째 “노아 당대의 사람들”을 지칭한 것으로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3. 무슨 내용을 선포하셨나?

주석에 따라 1) 심판 혹은 2) 구원을 선포하신 것으로 설명이 됩니다. 둘 다 가능합니다만, 벧전 4:6의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개정] 벧전 4:6)고 말한 베드로의 견해를 고려한다면 예수께서 옥에 갇힌 영들에게 선포하신 것은 심판보다는 구원의 메시지였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긍휼과 변함없는 사랑을 생각해 볼 때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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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richea, D. C., & Nida, E. A. A handbook on the first letter from Peter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1980), 114?117쪽에서 발췌하고 요약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