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에게 수태 受胎 예고를 받은 마리아가 천사에게 자기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천사가 이렇게 말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개정 눅 1:37). 오늘에야 이 본문 번역에 문제가 있음을 알았다. 억울하게... 천사가 마리에게 한 말이 “대저 하나님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는 거였는데, 지금까지 나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라고, 아무런 저항 없이 우리말 번역을 그대로 읽어 왔다. 지금 다시 여러 번역을 비교하면서 읽어보다가, 다른 번역들, 특히 영어번역들을 보니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능치 못하심이 없다”가 아니고,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For with God nothing will be impossible.”(CJB, MIT, NKJ, RSV, WEB)라고 번역된 것을 확인하였다. 우리말 번역은 이 본문을 왜 이렇게 이상하게 번역했을까? 혹시나 중국 한문역 漢文譯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 한문 성경을 찾아보니, 하나님의 말씀 神的話이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번역되어있다(因?出於　神的話、沒有一句不帶能力的). <구역 舊譯>(1911)이 나온 이래 <개역>(1938)이나 <개역한글판>(1956/1961)이나 <개정>(1998)을 거쳐 오면서, 여러 번 번역을 개정했으면서도 어쩌자고 이런 것은 그대로 두었던 것일까? 1) (이진희, 한국시간 2020년 12월 18일 오전 11시 30분 Facebook)

이진희 목사님,

이진희 목사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재미 在美 한인 韓人 교회를 섬기시는 목사님께서 그동안 우리말 성경 번역과 관련하여 facebook에 몇 번 올리신 여러 의견을 보면서,

1) 목사님께서 성경을 정독 精讀하신다는 것,
2) 정독 精讀하시는 만큼 내용을 정확 正確하게 파악하신다는 것,
3) 우리말 번역 문제도 적확 的確하게 지적하신다는 것, 이 외에도,
4) 목사님께서 섬기시는 교회와 성도가 성경 말씀을 잘 전달받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몇 가지 제 소견을 말씀드리는 것을 양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1) 신약 그리스어 본문 누가복음서 1장 37절 번역에 관해서는 세계의 번역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ASV, DRA, ERV, TNIV)는 번역과 “하나님께는 능하지 못하심이 없다”(CSB, ESV, KJV, NIV, NJB, NLT, NRS,... )라는 번역이 둘 다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대로 오면서 후자가 압도적으로 우세합니다.

2) 19세기 말에 활동하던 초창기 우리말 번역팀은, 한문역 漢文譯을 저본(底本/ source text)으로 사용한 조선인 朝鮮人 한학자 漢學者들과 영어번역을 저본으로 사용한 서양인 선교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인 번역자들은 중국어 번역인 <대표본문리 代表本文理>(1852)와 쉬운 문리 문체인 <천문리 淺文理>(1898) 성경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하였습니다.

3) 19세기 말 당시 조선인 번역자들이 저본으로 사용한 한문역 漢文譯 신약에는, 다음 인용에서 보듯이, 처음부터 “대저 하나님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라는 뜻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① 蓋上帝無所不能也(개상제무소불능야) (1852 代表本文理 눅 1:37),
② 蓋於上帝無不能成之事(개어상제무불능성지사) (1852 文理串珠 눅 1:37),
③ 蓋於天主無不能成之事(개어천주무불능성지사) (1898 Schereschewsky 淺文理 눅 1:37)

4)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와 같은 한문 번역은 1919년에 나온 중국어 화합본(和合本 / Union Version) 성경으로, 이 번역은 우리말 <구역>(1911)보다는 늦고, <개역>(1938)보다는 일찍 나온 성경입니다. 따라서 이 번역이 우리말 <구역>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5) 낱권으로 나온 최초의 우리말 번역 누가복음 1장 37절이 “하느님은 능티못한배업너니라”(1882 로스역 눅 1:37)로 번역되었다가, 신약 27권이 완역될 때 이것이 “하나님의말은능치안으미업나니라”(1887 로스역, 신약 눅 1:37) 라고 개정되었다는 점도 착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낱권으로 나온 신약 각 권이 신약전서로 합본이 될 때 더러는 개정을 거친 흔적을 보입니다. 누가복음이 그렇습니다.

6) 여러 언어 성경 번역에서 축자역 逐字譯 번역들은 그리스어 παρ? το? θεο? π?ν ??μα를 문자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 word from God”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영어번역 성경 ERV(1885), DRA(1899), ASV(1901) 등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이 우리말 번역에 반영되기 시작하여, 그것이 <구역>(1900/1911), <개역>(1938), <개역한글판>(1956/1961), <개역개정판>(1998)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7) 그리스어를 해독하는 서양 선교사들이, “대저 하나님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라는 번역을 검토하면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 παρ? το? θεο? π?ν ??μα, word from God”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말이, 한문역을 번역한 우리말 번역에 빠져 있어서, 그것을 보충해야 한다고 할 때, 신약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조선인 번역자들이, 신약 그리스어를 해독하던 서양 선교사 번역자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8) 우리말 번역에서 παρ? το? θεο? π?ν ??μα (word from God)를, 특히 ‘판 레마/ π?ν ??μα 를 “nothing”으로 이해하여,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전혀 없다/ For nothing will be impossible with God.”라는 번역이 다시 나오기까지는, 1882년 누가복음 이후, 대한성서공회가 <신약전서 새번역>을 출간한 1967까지, 꼬박 85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때는 이미 우리에게 신약을 그리스어 원문에서 직접 번역할 수 있는 성서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공동번역>(1977), <표준새번역>(1993), <성경전서 새번역>(2004)이 나오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공동번역),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표준새번역, 새번역)는 번역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역>이나 <개정>은 <구역>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9) 우리말 번역은, 대한성서공회 이외에서도 번역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다음 인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진희 목사님께서 너무나 늦게 알게 되어서 “억울하다”고 하셨지만, 이러한 여러 우리말 번역들도, 이 본문에 대한 주석의 결과를 받아들여 늦게나마 “하나님께는 못하실 일이 전혀 없다”는 뜻을 번역에 반영하였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생명의말씀사, 1977) 눅 1:37
“하나님에게는 안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한글킹제임스흠정역>(1996) 눅 1:37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느니라.”

<성경>(한국천주교회, 2005) 눅 1: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우리말성경>(두란노, 2014) 눅 1:37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다.”

<쉬운성경>(아가페, 2017) 눅 1:37
“하나님께서는 하지 못하실 일이 없다.”

<킹제임스성경신약개정판> 눅 1:37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느니라.”

<한글킹제임스성경> 눅 1:37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느니라.”고 하더라.

10) παρ? το? θεο? π?ν ??μα를 “하나님의 말씀/ word from God”으로 번역한 배경에 대한 시비는, 다른 기회에 다루겠습니다.

이진희 목사님의 성경 사랑과 치열한 읽기에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하며, 소견 피력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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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햇순> 독자를 위해서 이진희 목사님께서 facebook에 올리셨던 본래 본문을 좀 상세하게 진술하는 방법으로 조정하였음을 밝힙니다. (민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