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을 피나게 알리는 것이라 했던가. 현대사회에서 홍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피나게 알린 것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본다. 그래서 PR을 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리는 것이라는 조금은 진전된 定義(정의)를 내린 글을 본 적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듣는 세계는 가공되고 첨삭된 허상이거나 반쪽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무슨 말이나 글, 사진도 홍보의 덧칠을 걷어내야 참모습을 알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모교 살림이 어렵다는 동문회의 호소에 많지 않은 액수지만 동참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빠른 시일에 학교를 방문해달라고. 총장과 식사도 하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머리에 스치는 그림이 있어서 물었다. “기부금 액수 적은 판자들고 전달식하는 사진이냐고.” 그렇단다.

그래서 정중히 사양했다. 그랬더니 그래야 학교 홍보지에 실린단다. “홍보지에 안 실려도 괜찮습니다. 제가 한 것도 아니고 교회가 한 겁니다!‘

오래전, 복지기관을 섬기던 교회에서 일 년에 몇 차례 위문품을 가지고 방문하고는 했다. 위문품이라고는 하나 라면과 휴지 그리고 떡 같은 것뿐이었다. 그때마다 사진 촬영과 수용자(?)들이 기거하는 숙소들을 돌아보고 가라는 제안을 받았다.

가지고 간 물건을 쌓아놓고 찍는, 틀에 박힌 사진과 스스로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방을 들여다보는 일을 말한다. 방문자 대부분이 그러기를 원하고, 일종의 홍보도 되기에 시설의 관계자들에게는 늘상하는 업무의 일환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지만, 매번 같은 일이 되풀이되던 기억이 있다. 거절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시설에서 돌봄을 받는 수용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낯선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여다보고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에 얼마나 마음이 상할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지키고도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기를 PR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세상이어서 일까?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사고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가 곤욕을 치르는 정치인들도 종종 본다.

그뿐인가, 어느 교회는 주일 낮 예배에 (다른 교회 교인인)시장을 불러 불우이웃 성금 전달식을 하고, 그 장면을 촬영해 홍보하기도 한다. 그냥 관계부서에 전달하면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주님은 칭찬하셨을 텐데.

그리고 그렇게 해도 주변에 자연스럽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구닥다리이기 때문일까, 목사로서 마음이 편치 않다(주일에 자기 교회에 출석지 못한 시장의 심정은? 그리고 그 교회 목사의 심정은?). 하기는 그런 불편함은 나만이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칭 ’정인이 사건’으로 더욱 추운 겨울인 듯싶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일을…’하시며 옛 어른들의 탄식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른이라는 사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이, 아니 인간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 목을 끌어안고 칭얼대는 손녀와 눈을 맞추기가 힘에 겹다.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써야 할 경천동지 驚天動地할 일이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처럼 악마를 길러냈을까, 악마화 되었을까? 정인이가 묻혔다는 ‘안데르센 공원묘원’에는 전국에서 달려온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니 그래도 조금은 위로가 될까? 해맑은 얼굴의 정인이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정인이의 사진이 화면에 등장할 때 한 번도 제대로 바라보지를 못했다.

여론에 떠밀려 급조되는 법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며,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정인이가 얼마나 많은 줄 아느냐고 묻던 전문 변호사의 글이 예리한 칼처럼 폐부를 찌르고, 조금이나마 아직은 남아있는 양심이 아득하다.

교계의 유명 인사들도 추모의 발걸음에 참여했다. 당연한 일이다. 엄동설한 嚴冬雪寒에 점퍼차림으로 달려와 추모하는 그 진심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조금은 위로가 되었으리라.

그런데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일까, 아니면 까칠한 탓일까? 친구가 찍어 SNS에 올려 보도되었다는 사진에는 그들을 향한 촬영자의 모습이 찍혀있다.

또 다른 교계 인사의 추모 사진도 SNS에 떠돌고 있다. 한적한 순간의 방문이라는데. 파파라치에 의해 찍힌 사진이라면 몰라도! 사진 한 장 없이 그분들의 방문이 후일담으로 전해졌더라면. 나만의 생각일까? 사진 찍는 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없을까? 우리는 그분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