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학교폭력이 많은 유명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철없던 시절의 행동이 그동안 쌓아놓은 공을 이렇게 무너뜨릴 줄은 예상 못했을 것이다. 학교폭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이들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학교폭력은 그런 일이다.

한동안 나는 학교에서 학교폭력 사안을 해결하는 업무를 담당했었다. 폭력 행위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일어나는 경우도 있으나 어떤 경우든 그로 인한 상처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이유로 인해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있다 보니 학교에서 폭력과 상관없이 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선생님, 어른들은 우리가 학교에 공부하러 다니는 줄 아시지요? 아니요. 학교는 전쟁터와 같아요. 언제 힘센 아이들의 시비에 걸려들어 학교생활이 지옥 같은 생활로 변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다니고 있다는 걸 어른들은 몰라요.” 라고 이야기 한 학생도 있었다.

한번은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학생이 학급의 힘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사안이 발생하여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되었다.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만나 해결하는 과정에서 가해 학생의 어려운 처지가 드러나게 되었고, 가해 학생은 자존심이 상하여 괴로워했다.

아들 하나 믿고 살던 아버지도 이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피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어머니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주말에 들려온 소식은 가해 학생이 죽고 싶다는 편지를 써놓고 집을 나갔고, 이를 알게 된 아버지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 학생도 그동안 시달려 오면서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어했고, 이를 지켜보던 어머니도 우울증 약을 처방 받고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해 학생이나 피해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까지 모두 삶을 놓아버릴 것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친구들을 동원해 가출한 가해 학생을 찾고, 양쪽 부모들을 만나고,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부정적인 해결 방법이 아닌 긍정적인 해결 방법으로 선회하도록 동분서주하며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피해학생들 중에는 허약하고,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가해 학생들에게 잘못한 일도 없이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거나 왕따를 당하는 경우들이 있다. 학교생활 자체도 버겁고 힘든데 거기다 학교폭력에 시달리기까지 하면 이들은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 밖에는 할 수 없고, 전학 등으로 이 상황을 피하지 못할 때 안타까운 결정을 하기도 한다.

나는 그런 학생들을 대할 때면 나의 학창 시절 친구들이 떠오른다.

유난히 몸이 허약했던 나는 쓰러지기를 반복하며 학교에 다녔다. 체육 수업이나 운동장 조회, 청소, 보충수업, 자율학습 등 정규수업 이외의 활동은 모두 면제받았고,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가 보지도 못했다.

친구들은 서로 어울려 공부를 하거나 놀러 다니는 시간에 나는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거나, 이런 저런 치료를 받으러 다니며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며 사느라 바빴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컨디션은 더욱 나빠졌기 때문에 9시 이후에는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 다른 학생들보다 늦게 등교하였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학교에서는 특별 배려를 해 주었고, 나는 그렇게 독특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수업은 체육수업이었다. 처음에는 나와서 다른 친구들 수업하는 걸 견학하라고 했으나 이내 햇빛 받아 쓰러지니 아예 나오지 말고 교실에 있어라 해서 체육수업은 완전 면제를 받았다. 운동장을 달리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학교생활에서 즐겁고 재미있을 시간들은 모두 빠지고, 혼자 교실을 지키는 외로운 시절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수시로 쓰러져 실려 오는 날이 많았다. 다시 회복하기까지는 며칠이 소요되었고, 어느 정도 걷게 되면 다시 등교를 했다. 당연히 그 회복을 위한 날들은 결석이었다.

나는 서울 한복판에 있는 이화여고 출신이다. 경쟁이 심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결석을 자주 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 큰 장애물이었고, 손실이었다.

지금처럼 온라인으로 보충을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고, 몸이 약하니 학원 수업이나 과외 등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오로지 학교 수업만으로 배움에 만족해야 하는데 결석으로 인해 그 배움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날아가 버리는 안타까운 일들이 번번이 벌어졌다. 그러나 밀린 공부를 하기 위해 뭔가 시도를 하다 보면 건강이 악화되니 늘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사정을 친구들이 살펴주기 시작했다. 쓰러지면 업어서 보건실로 데려다주고,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지 못해 궁금해하는 나를 앉혀놓고 다녀 온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다. 내가 결석하여 배우지 못한 부분의 공책을 빌려주더니 그 필기하느라 힘들어 하는 나를 보고는 그 뒤로 아예 공책 필기를 해서 주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 반 친구들 전체가 나를 돌보며 학교생활을 이어가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당시 친구들에게 소외되기 좋은 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친구들은 나를 외롭게 두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도와주고 함께 해주었다. 그러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는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대학을 나와 학교 교사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친구들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이런 말을 해 주곤 하였다.

“여러분들이 친구들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렇게 나 같은 사람이 되어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여러분들로 인해 외롭고 힘겹게 살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나올 수도 있는 거에요. 나와 같은 친구를 만들어내면 마음으로 뿌듯하고 함께 행복할 수 있지만, 자신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친구를 만들어내면 아무리 잘 살고 싶어도 결코 행복하게 잘 살 수가 없어요. 인생의 이치가 그래요. 과연 어떤 친구가 되어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기 바래요.”

이런 나의 친구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이런 내가 학교폭력 사안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친구들의 사랑은 큰 힘으로 작용하였다. 그 결과 ‘학교폭력상담(학지사)’이라는 책의 공동저자가 되기도 하였다.

학교 폭력은 그 후유증이 심각하게 남고, 가·피해 학생과 그 가족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부담과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그 해결 과정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교폭력 피해자가 요구하는 것은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다. 그런데 가해자 입장에서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아 미해결과제로 남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결되지 않고 응어리로 남아 있던 것이 세월이 흐르고 가해자가 유명인이 되어 눈앞에 자주 나타나게 되면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다시 그 때의 악몽 같은 순간이 떠오르고 오래전 일이라 해도 이를 세상에 알리는 일들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가는 길의 발목을 잡은 것이 아니라 그 당시 가해자 스스로가 잘못된 행동에 대한 해결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발목을 잡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힘든 친구를 위해 공책 필기를 해주는 인성을 가진 사람들로 키워내는 것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