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다. 그러나 같은 단어라고 해서 같은 의미는 아니라는 것을 종종 잊을 때가 있다. 그래서 ‘같은 말’을 해 놓고는 ‘다른 해석’으로 전해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국가 간 외교에서는 그러한 상황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활용하여 위기를 타개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더 큰 불신과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용어’의 명확한 정의는 효율적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하다.

물론 학술서적이라든지 중요한 계약서에는 당연히 용어의 정의가 명시되거나 이미 관련 학계 등에서 확립된 의미로 사용하기에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오히려 일상에서다. 문제는 늘 사용해온 같은 단어에 대한 의미를 이념이나 진영에 따라 다르게 이해하고 사용하는 경우다. 그래서 상대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필요하지만, 그 또한 장삼이사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니 신문 한 장 읽는데도 지력 智力이 달린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의 글에서 읽은 이야기다. 어느 날 룸메이트와 드라이브를 하다가 도로 표지판을 망가뜨렸다, 다행히(?) 어두운 밤인 데다 보는 사람도 없어서 그냥 돌아왔단다. 그런데 며칠 후 공공기물 파괴 혐의로 소환장이 날아왔다. 기막힌 노릇이었다. 그날 목격자도 없었고 숲속 길이라 카메라도 없었다. 귀신 곡할 노릇이라 룸메이트에게 호소 아닌 호소를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자기가 신고했노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얼굴을 붉혔더니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신고하는 것이 시민의 도리요 의무라고 해서 할 말이 잃었단다.

그 에피소드 끝에 이런 글이 이어졌다. “미국 사람들의 준법의식, 정직성은 그들이 특별히 윤리적이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지켜보고 반드시 신고하기 때문이다.” 그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투철한 신고 정신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신고는커녕 분명한 현장 목격자들도 증언을 거절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우리 사회이기에.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전대미문의 ‘예배금지’라는 말이 공공연히 언급될 때, 몇 사람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한 사람이 어느 교회 이야기를 했다. 교회가 고발되었는데 알고 보니 고발자가 그 교회 교인이었다는. 조금 놀랍기는 했지만, 솔직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자기 교회를 고발했겠어. 뭔가 오해겠지.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무언가 개운하지가 않았다.

지금도 시행하는지는 모르겠으나,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발표하면서 방역법 위반자를 고발하면 포상금으로 10만을 지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는 가십 같은 기사들이 심심찮게 보도되기도 했다. 어느 집에 치킨 세 마리를 배달하고는 신고를 했다던가, 명절에 시집에 억지(?)로 내려간 며느리가 친구를 시켜 신고하게 했다는 뭐 그런 기사들이. 하지만 혀 한번 끌끌 차거나 웃어넘기고 말았다. 언제나 그렇듯 멀리서 일어난 전쟁보다 앞집의 부부싸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 인지상정 人之常情이니까.

그러나 최근 강 건너 불일 수 없는 경우를 알게 됐다. 잘 아는 어느 교회가 참으로 오랜만에 회원이라야 몇 안 되는 남선교회 모임을 갖기로 했는데 고발되었다는 것이다, 그 교회 교인에 의해. 당연히 그 모임은 취소되고 그 교회에서 열기로 했던 교회 행정모임도 같은 이유로 급히 장소를 옮겨야 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뛰어난 시민 의식인가, 양심적인 내부 고발자인가? 아니면 배신자인가? 뭐라고 호칭하는 것이 정확한 용어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목적이 무엇이었든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십자가에서’(리처드 보컴&과 트레하트)에는 헬무트 틸리케의 말을 빌어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다. 나치에게 체포되어 독방과 감금, 폭행과 고문으로 고통을 당했지만, 끝까지 저항의지를 잃지 않고 이겨낸 사람 이야기다. 그런데 그가 풀려난 후 2주 만에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단다.

강인했던 그를 무너뜨린 이유는 하나였다. 자신의 정보를 나치에게 주어 체포당하게 한 사람이 바로 자기 아들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지나친 과장일 수도 비약일 수도 있지만, 어떤 용어를 갖다 붙이든 교회 내 고발자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득해진다. 진정 이 땅의 교회는 실패한 것인가, 아니면 깨교인(?)을 길러낸 쾌거를 이룬 것인가? 나는 간이 콩알만하다. 그래서 이런 글을, 저런 용어를 쓴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리고 떨린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한심한 목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