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계절입니다. 이상기후에 지구가 몸살을 앓지만, 계절의 순환은 어김이 없습니다. 가지마다 푸른빛이 돌고 생명이 움트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도 그런 자연의 순환을 닮았습니다. 죽음과 부활은 삶의 종착지가 아니라 과정이며, 영적 성숙을 향한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광야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리고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 직전 십자에서까지, 예수님은 자기와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죽임으로써 새로운 생명의 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자연이 순환된다고 해서 지난해의 봄이 올해의 봄은 아닙니다. 봄은 봄이되 전혀 새로운 봄입니다. 열매가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그’ 열매는 사라져 버린 것이고, 전혀 새로운 생명이 오고 또 그에 맞는 새로운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환은 같은 것의 반복이 아니라 옛 것은 가고 새로운 것이 오는 창조적 진화입니다.

열매가 떨어져 죽는 과정이 없으면 새로운 열매는 없습니다. 우리의 부활도 죽고, 썩고, 사라지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열매’는 한 삶의 전 全 과정입니다. 애쓰고 땀 흘려 만들어 온 모든 과정의 결정체가 열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죽고 썩어 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어떻게 그것을 죽이고 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세상에서 미워해야 할 목숨’, 우리가 죽이고 버려야 할 ‘그 목숨’은 무엇일까요? 에고의 환상에 빠져 살고 있는 목숨입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차를 타고 깊은 잠을 자고 있는, 무지 無知의 삶을 사는 목숨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목숨은 달콤한 꿈입니다. 악마가 우리 영혼을 삼키려 주는 마약과도 같습니다.

자기를 죽이라는 것은 자신의 일상을 부정하고 도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잠든 채 살 것인가, 깨어 살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똑같은 일상의 행위를 어떤 사람은 잠든 채 하고 어떤 사람은 깨어나 합니다. 겉으로는 똑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에고의 욕망에 우리 자신을 내어주었을 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욕망의 잠에서 깨어나면 보이기 시작합니다. 지금 여기 이 시공간에 다른 차원, 즉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내가 고통으로 보았던 세상이 실상은 찬란한 빛에 휩싸여 있는 것을 목도하고, 황홀한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도, 장소도, 일도, 환경도,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너무나 아름답고 충만한 세계가 열린 것입니다. 곳곳이 낙원이요 모두가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장님이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보지 못하지만 보지 못한다고 세상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태초에 주님은 빛을 만드셨습니다. 빛이 있으므로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창조의 빛은 지금도 여전히 있습니다. 소경이 눈을 뜨듯 우리의 눈이 열리면, 이제껏 보지 못했던 세상이 보입니다. 달라진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입니다. 내가 잠에서 깨어난 것이요, 내 눈에서 에고의 비늘이 벗겨진 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려 했던 예수는 자신을 바꾸었습니다. 자신의 뜻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에 따랐습니다. 개혁의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입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내가 눈을 뜨면 잠든 인간들이 만들어낸 거짓 세상은 사라집니다.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 선과 악, 하늘과 땅, 이런 모든 이분법적 분별지심은 사라지고 본래의 내가 고요한 미소로 새로운 삶을 맞이합니다. 그것이 부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