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 개그 한 도막. 세상에서 제일 날씬한 사람은? 정답은 ‘빗 雨 사이로 막가’다. 얼마나 날씬한지 소나기가 내려도 걱정이 없는 사람이다. 세상이 험악하다. 막돼먹은 시위 현장처럼 비판과 정죄의 돌멩이가 사방에서 날아든다. 앗차 하는 순간에 머리가 터질 판이다. 던지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그냥 던지고 맞을 뿐, 따져 보려고도 않고 따져 볼 수도 없다. 던지다 다른 소리가 들리면 ‘아닌가벼’ 그것으로 끝이다. 다른 사람이야 만신창이가 되든 말든. 이런 세상을 살아내려면 ‘돌 사이로 막가’는 재주가 있어야 할 텐데 장삼이사들로서는 요령부득이다.

지난 7월, 교인들로서는 민망한 기사가 매스컴을 장식했다. “베이비 박스 목사, 기초생활수급비 2억 900만 원 부정 수급…후원금 횡령 의혹도”. 베이비 박스 목사로 불리는 분은 주사랑공동체 이종락 목사로 부모로부터 조차 버려진 신생아들을 보호하여 입양을 알선하고, 장애가 심해 입양조차 어려운 아이들은 직접 입양하여 양육해온 분이다. 지난 10년간 그의 손을 거쳐 간 신생아가 대략 1,500명이란다. 지금도 친자식을 포함해 12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단다. 자식 하나 키우기도 어렵다고 징징대는 세상인데 얼마나 힘에 부칠까. 후원자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오롯이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저 기사의 속 살은 무엇일까?

그 많은 생명을 돌보는 데는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까. 누가 봐도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것이고 당연히(?) 기초생활 수급자로 등록되어 정부의 도움을 받아왔단다. 그런데 ‘법조문’대로라면 목사로 교회에서 월급을 받으니 수급대상자가 아니란다. 그러나 그러한 법조문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아이들을 잘 돌보라고 주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써왔는데 한순간, 범범자로 몰린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부정수급을 받은 사람이니, 당연히(?) 후원금도 횡령했을 것이라는 추측 기사를 내보내고. 다행히 전후사정을 아는 많은 분이 동정하고 이해하는 격려의 글을 댓글로 단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후속 기사는 나오지 않고 있다.

80년대 중반, 새로 부임한 교회 건너편 양지바른 산기슭,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 처마 앞에는 항상 세 사람이 쪼그려 앉아있었다. 어느 날, 마을 사정을 잘 아는 젊은 집사에게 물었더니 남편이 죽고 남매를 데리고 사는 집이라면서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남편이 문둥병을 앓다가 죽어 마을 사람들과 왕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 주일 예배 후에 임원들에게 입을 열었다. 저런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교회의 일이라고. 그리고는 부정적 반응을 애써 외면하고 교인들과 그 가정을 찾아갔다. 그런데 아뿔사! 앞장서 문을 여는 순간 방안 광경과 악취가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이미 엎질러진 일, 그래도 목사인데 어쩌랴. 일단 멈칫거리는 교인들을 재촉해 예배를 드렸다. 사람 사는 집이 이럴 수가 있을까. 너덜너덜한 벽지는 온통 피고름 자국 천지였고, 지적장애가 있는 엄마와 아들은 물론 딸도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몰골이었다. 반강제적인 결의로 교회가 그 집 안팎 수리와 전기 설치를 마치고 교회에도 나오게 했다. 그리고는 속회에 편성하여 돌보게 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문둥병에 대한 선입감 때문에 마을 누구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딸은 외지 미장원 보조로 보내고, 지적장애가 있는 아들은 소를 기르는 교회 권사 집으로 보내 돌보게 했다. 믿지 않는 아버지가 ‘문둥이 자식’을 집에 들이기를 격하게 반대했지만 신실한 아들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끼니를 거르지 않고, 조금씩 일도 거들기 시작하니 살도 붙고 힘도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적장애라 건초 나르는 일을 돕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야말로 군식구였다. 그래도 그 권사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 적지만 적금까지 들었다. 문둥병 의심 증세가 나타나 대학병원을 찾는 등 그 권사가 겪은 사연을 적으면 두툼한 책 한 권은 족히 되었으리라.

그런데 일이 터졌다. 지금껏 눈길도 주지 않고, 비웃던 사람들이 그 아이가 착취당하는 것처럼 떠들어 댄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난리가 났다. 다행히 오해가 풀렸지만 그 아이는 따듯한 보금자리를 잃어야 했고, 난 그 권사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정말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세상의 민낯인 것을. 그때를 생각하며 자문해 본다. 또 그런 일을 만난다면? 자신이 없다. 외면할 것만 같다. 그러면 누군가는 돌을 들겠지. “네가 그리고도 목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