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민족주의자(?)인 나는 구(글)선생 보다는 네(이버)선생 댁을 자주 방문하는 편이다. 오늘은 국립묘지 國立墓地라는 화두를 가지고 방문했다. 그랬더니 늘 그렇듯 친절하게 알려준다. “군인ㆍ군무원 또는 국가 유공자 등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ㆍ공헌한 사람이 사망한 후 그를 안장하고 관리하는 묘지. 이전의 국군묘지를 개칭한 것이다. 현재 국립 서울 현충원, 국립 대전 현충원, 국립 4ㆍ19 민주 묘지, 국립 5ㆍ18 민주 묘지, 국립 호국원 따위가 있다”.

글 머리에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까닭이 있다. 시대가 험난한 까닭인지 모두들 만사에 예민하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목숨을 거는 듯한 공격성 반응들이 다반사이고 보니 웬만하면 입 닫고 있고, 글 쓰지 않는 게 상책인 듯싶다. SNS에서도 되도록 눈팅만 한다. 가장 밉상이 눈팅족이라지만, 선천적으로 간이 작다보니 어쩔 수가 없다. 혹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 페친들이 있다면 하해 河海같은 도량으로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어려서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서울은 고사하고 읍내 邑內에도 못 가 본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던 시절, 마을 사랑방 격인 느티나무 아래서 두 사람이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세상 구경 중에 제1이 불구경이요, 제2가 싸움이랬으니 당연히 이 사람, 저 사람 모여들 수밖에. 격론의 주제는 국군묘지. 나름, 조선 팔도가 좁다고 떠돌아다니는 모씨 某氏가 열심히 자신의 견문을 침을 튀겨가며 화제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화제가 문제의 ‘국군묘지’에 이르자 분위기가 썰렁해지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다른 모씨 某氏가 이의를 제기했다. “당신 말은 국군묘지가 평평한 들판에 비석만 늘어서 있다는 것인데 그런 거짓말을 믿으라니 우리를 어떻게 보고 그러느냐. 전에 나도 가봤는데 국군묘지는 수많은 바가지를 엎어 놓은 형상이더라.”

결국 모여든 사람들까지 갑론을박 甲論乙駁에 가세하고, 두 모씨 某氏가 멱살잡이 직전까지 간 끝에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이 제시됐다. 누구 말이 맞는지 모인 사람들이 투표로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결과는? 당연히 ‘국군묘지는 수많은 바가지를 엎어 놓은 모습임’. 그들 중 아무도 첫 번째 모씨 某氏 외에는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대처 大處’에 가 본 일이 없다는 것을 의식하거나 입 밖에 내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고, 그 비슷한 이야기로 남대문 문지방 이야기도 기억의 편린 片鱗 속에 있다.

이 에피소드가 실화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지어낸 것인지 나 자신도 모른다. 다만, 어릴 적 기억에 남아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합리성, 논리성을 귀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다. 그래서 누군가의 주장이나 사건에 합리적, 논리적 혹은 과학적이라는 잣대를 가져다 댄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항상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이기까지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하지 않았던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으로 해명되는 사건이야말로 문제의 여지가 있다고. 오히려 조금은 합리적이거나 논리적·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건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아니 그런 주장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으니 그런 주장은 논외로 한다고 해보자.

그렇지만, 그 합리성·논리성·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자기 경험의 세계, 자기 지식의 세계라는 한계에 갇혀있는 것이 아닐까? 전통적으로 우리가 보아 온 무덤은 당연히 바가지를 엎어놓은 형상이 아닌가? 그런 전 前 이해만을 가진 사람들이 아무리 깊은 추론을 해도 결국 결론은 익히 보아 온, 바가지를 엎은 놓은 형상의 전통적인 공동묘지 아니겠는가. 유대인들의 돌무덤을 상상도 못 했을 때,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요11:38)이라고 친절히 설명하고 있음에도 도무지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사건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처럼.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논쟁하면 비전문가가 지지를 받는 시대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단어 하나, 글 한 줄에도 시비하고 분노하는 시대라면 또 무슨 소릴 들을까? ‘국군묘지’라고 하면, ‘아니다 국립묘지다, 현충원이다, 무식하다’라는 아우성이 두려워 미리 네(이버)선생 신세를 지는 내가 나도 한심하기는 하다.

하지만 세상이 너무 험한 것은 사실이 아닌가? 국군묘지에 가 보지도 못한 사람이 더 큰 소리를 내고 그런 사람들의 의견이 많은 사람의 환호 속에 주류를 이루어 가는 듯하다. 교인보다 교회를 더 잘 알고, 목회자보다 목회를 혹은 목회현장을 더 잘 아는 전문가(?) 앞에서 주눅이 드는 이가 나뿐이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