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마을 공동체가 점점 구체화되는 요즘, 어떻게 집을 지을까 집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외관보다는 내부의 구조와 인테리어에 더 마음이 쓰입니다. 기본개념은 단순함과 비움입니다. ‘인테리어 interior’의 의미가 보이는 물건들을 보이지 않게 내륙이나 오지에 넣어두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인테리어의 핵심은 디자인보다는 물건을 줄이거나 버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단순한 구조와 빈 공간이 많아져야 바람이 잘 통하고 집 안과 밖이 분리되면서도 하나로 이어지는 좋은 집이 된다고 믿습니다. 문득 명상도 그와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몸도 집과 같은 구조물이고 수많은 방들이 있고 가구도 있는 공간인데, 몸에 맞는 좋은 인테리어는 무엇일까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집의 인테리어가 그렇듯 몸의 인테리어도 단순함과 비움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습니다.

몸에 쌓여 있는 온갖 잡동사니부터 치우기 시작합니다. 미움, 분노, 아픔, 절망, 슬픔 등을 내다버리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이나 불안, 온갖 계획과 판단, 생각을 버립니다. 계획을 버린다고 무계획적인 인생을 살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아무리 갖다 버려도 인간은 너무나도 많은 계획을, 여전히, 갖고 삽니다. 몸에 쌓인 긴장감, 통증, 불쾌감, 경직된 것들도 버립니다. 그리고 각각의 장기들을 방이라 생각하고 텅 빈 공간처럼 상상하며 바라봅니다. 점점 정갈하고 맑고 깨끗한 집이 되어갑니다. 그렇게 명상은 이어집니다.

좋은 집에 머무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좋은 명상의 몸에 머무르면 기쁨과 활력이 솟아납니다.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행복의 근원은 밖에 있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나의 몸에 있습니다. 몸의 공간 공간마다 생기가 흐르고, 기쁨을 느끼는 몸은 감전되듯 전율합니다. 텅 빈 공간에 고요하게 머무르다보면 새로운 감각들이 찾아옵니다. 새소리, 매미소리, 아련히 들려오는 소음들, 흐르는 바람, 바람결에 느껴지는 비의 냄새, 감정이 아닌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나와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행복한 풍요로움의 근원입니다.

최근 저의 가족 한 사람이 말기 암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가족 모두가 걱정, 불안, 두려움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인테리어 명상이 필요합니다. 병들고 낡은 집이라도 정갈하게 비우고 청소하면 새로운 생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기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기도, ‘비워주소서!’입니다. 비움이 크면 클수록 그 공간에 하나님의 향기로 가득 찰 터이니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살려달라는 삶의 연장 대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삶의 향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비우는 일입니다.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내 안에 관철시키는 일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려 떼를 쓰고 너무나 소란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기도는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최상이 아닐까요? 그저 아버지와 더불어 함께 앉아 있는 것, 아무 말 없어도 너무나 충분한 느낌으로 머물러 있는 것, 그것이 진정 기도가 아닐까요?

코비드19, 폭우와 장마, 화산과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피할 수 없는 재해들이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인재를 제외하면, 살고 죽음은 창조의 질서입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삶의 문제입니다. 비록 더듬어 찾지만, 온통 어둠뿐인 것 같은 우리의 고통스런 삶에도, 하나님은 가까이 계십니다. 맑고 고요하게 앉아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