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긴 시간을 통풍과 함께 지냈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고 해서 통풍이라 할 만큼 극심한 통증으로 고생했습니다. 통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시간들이 그저 지나기만을 바라면서, 기도도 요가도 명상도 소용없는 순간들을 여러 차례 경험했습니다.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좌절감과 함께, 자기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면서 목사로서 또 교육자로서 내가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까 회의가 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통증보다 더 괴로운 것은 바로 그런 마음의 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에게 바울이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말한 고백은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그가 영적으로 매우 민감했을 때, 셋째 하늘에 이끌려 올라가고, 낙원에 이끌려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대단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신비로운 일들을 경험했지만, 그는 오히려 바로 그때 자기 몸의 약함을 경험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 자기가 교만해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몸에 가시(사탄의 하수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가시를 떠나게 해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으나 그가 받은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9)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깨달았습니다. 약함이야말로 감출 것이 아니라 자랑할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무르게 하기 위하여 나는 더욱더 기쁜 마음으로 내 약점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9) 바울은 병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약하거나 강하거나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자기에게 충만하게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주님께 눈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김영운 목사님은 자주 말씀하곤 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신앙 간증은 거의 성공담 일색이다. 그러나 실패담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신앙 간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왜 실패를 이야기하고 자기의 약함을 고백하는 것을 기피하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왜 거짓 성공신화로 자신을 포장하고 자기의 강함을 드러냄으로써 주님을 필요 없는 존재로, 아니면 나의 성공을 위한 하나의 장식품 정도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요?

아이들이 한번 병치레를 하면 부쩍 큰다는 것을 부모들은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어른들도 심각한 병치레가 영혼의 성장을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병에 걸린 교우들에게, 심지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더라도, 너무 많은 걱정을 하지 않고 따뜻한 위로와 함께 영혼의 문제를 이야기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누구인들 사형선고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번에도 통증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통풍과 함께 하면서 제 영성의 문제를 많이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우리는 통풍을 앓고 있습니다. 바람만 불어도 아픈 것들이 너무 많아 국민들 모두가 극도로 민감해져 있습니다.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일반화되고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져가는 것은 아닐지 점점 걱정이 앞서고 있습니다. 특히 미래 전망이 보이지 않는 삼포세대 젊은이들의 붕괴 조짐은 크나큰 우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타개하려 하기 보다는 문제의식 자체가 없어 보입니다.

병든 젊은이들, 양극화되어가는 약자들에게 온몸으로 이 고통을 기억하고 함께 안고 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욕망과 무지의 힘이 강성해져 어둠이 계속되지만, 오히려 이것을 우리의 영적 각성을 이루는 기회로 만들 것을 요청합니다. 지금 저는 코카서스 지역 조지아(그루지아) 므츠케타의 한 민박집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마을을 둘러싼 산이 보이고 산꼭대기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는 십자가를 보고 있습니다. 국민 90%이상이 정교회 교인인 조지아는 비록 경제는 세계 130위권이지만, 신앙을 통해 지켜온 그들의 따뜻한 국민성은, 수없는 내전과 역사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역사적 물질적 고통을 이겨내게 한 그들의 신앙, 곧 영성의 문제가 바로 오늘 우리도 찾아야 할 길, 아니 마땅히 가야 할 주님께서 이끄시는 길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본래 우리 민족은 하늘 백성이 아니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