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을 담아내는 말이 있습니다. ‘소망’입니다. 소망은 신약성경이 지닌 독특한 용어로 불교, 힌두교, 유교 등 다른 종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망은 우리가 바라는 그 무엇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 소망은, 지금은 우리 눈에 가려져 있는 미래 세계 즉, 계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확실하고 신뢰할만한 그 무엇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소망이 있는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소망을 품고 산다는 것은, 확신을 갖고 바라보는 그 무엇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는 진정 소망이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 시대는 ‘계시’가 아닌 ‘이성’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감성시대’를 말하기도 하지만, 그건 지엽적인 문제입니다. 이성은 합리성의 총화로, 분석하고 종합하고 해석할 수는 있어도 소망을 품게 하지는 못합니다. 이성의 시대에 점술 복술이 번성하는 것은, 이성이 소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성이 주도하는 오늘날은 누가 역사 해석을 주도하는가? 합리성으로 무장한 과학자들, 경제학자들, 기업인들, 지식인 등 소위 ‘전문가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펙트’를 근거로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펙트’는 늘 불확실합니다. 그들은 역사의 진보를 갖가지 수치와 거대 프로젝트를 통해서 말합니다. 그 역시 뜬구름잡기입니다.

정치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게 유사 계시입니다. 2만불 시대니, 3만불 시대니, 선진경제니, 창조경제니 하는 게 그런 아류입니다. 사람들은 삶이 고단할수록 미래가 담긴 계시의 언어를 듣고 싶어 합니다. 박근혜 후보를 사람들이 열렬히 지지했던 것은 그가 구사한 언어들이 그나마 계시의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국민 행복시대를 열겠습니다!’ ‘국민 통합 시대를 열겠습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통일시대를 열겠습니다.’ 모두가 계시의 성격을 띤 공약들입니다. 경박한 언어와 뻔뻔한 거짓말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팍팍한 이성의 언어가 아닌 확신에 찬 계시의 언어가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게 유사 계시였다는 데 있습니다.

20세기 들어 가장 신뢰할만한 계시의 언어를 구사한 사람 가운데 하나를 들라면 아마 마틴 루터 킹 목사일 것입니다. 그가 “나는 하나의 꿈이 있다”고 연설할 때, 사람들은 인종을 뛰어넘어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남아공의 만델라 대통령도 계시언어의 달인입니다. 그들의 언어가 세계를 움직인 것은, 그들이 겪은 고난의 삶이 인격으로 승화되어 언어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격이 아닌 단지 말의 기교만 부린 계시의 언어는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저 옛날 이사야는 어두운 역사 한가운데서 하나님께로부터 무한한 힘과 능력을 공급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유다의 멸망이 목전에 놓여 있을 때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고 노래했습니다. 국론은 분열되고, 생활을 팍팍하고, 정의는 사라지고, 하루하루 불안이 가중될 때입니다. 나라가 망해서 바빌론 포로생활을 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장차 이뤄주실 구원의 기쁨을 앞당겨서 부른 노래입니다. 이성으로 본 세계는 절망뿐이었지만, 계시로 본 세계는 구원의 열정과 소망을 가지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계시의 언어를 통해 역사를 바라볼 때, 질서정연한 것처럼 보이고, 무소불위로 보이고, 불변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순과 불확실성, 어리석음, 교만, 나르시시즘으로 가득한 실상이 보입니다. 우리에게 삶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계시입니다. 예언자의 날카로운 비판은 여기서 나옵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언어입니다. 성공의 언어, 위로의 언어, 치유의 언어, 세련된 언어, 희망의 언어, 싸구려 축복언어 등은 차고 넘침에도 계시의 언어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간간이 계시의 언어가 쓰임받기는 하지만 고난 가운데서 승화된 언어가 아닙니다. 심판이 제거된, 자기 삶과 유리된 언어에 소망의 빛이 담길 까닭이 없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날마다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곳곳에 절망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소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교회마저 심판이 제거된 유사 계시언어만을 남발하고 있으니 여간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