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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삶의 뜨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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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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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결혼 대리인인 아브라함의 시종이 노쇠한 주인의 명을 받들어 머나먼 메소포타미아까지 찾아갑니다. 그곳 우물가에서 처음 만난 처자가 리브가입니다. 시종은 리브가에게 “네가 뉘 딸이냐”고 묻습니다.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입니다”(창 24:23-24). 리브가는 친가의 계보에서 아버지를 말하지 않고, 외가의 계보에서 아버지를 말합니다. 이를 미뤄 보면 리브가의 외할머니 밀가는 여족장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봅니다. 혼담은 신속하게 이뤄지고, 리브가의 오라비 라반이 누이를 가나안으로 떠나보내면서 축복한 말은 그 개연성을 더욱 높여줍니다.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창 24:60). 시집가는 누이에게 남편 ‘이삭의 씨’가 아닌 ‘네 씨’로 “천만인의 어미”가 되게 하라니! 리브가는 당초 부계가 아닌 모계를 통해 자기를 인식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 리브가였기에, 경박한 처신에, 고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입맛이나 섬기는 에서가 아닌 야곱을 택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물론 에서는 활쏘기를 좋아하고 뻔뻔한 성격인데 반해, 야곱은 집에 있기를 좋아하고 순종적이어서 어머니 입장에서 나쁜 짓만 하고 다니는 에서가 아닌 순종적인 야곱을 택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리브가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아브라함과 이삭 등 부족의 수호신에 불과한 신을 야곱 대에 이르러 부족에서 나와 격동하는 세계 속의 신, 곧 역사화한 신으로 섬긴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역사 현장에 드러난 신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유발하고 상처를 입기 마련입니다. 믿음을 품고 산 야곱의 생애가 이를 말해줍니다. 마찬가지로 성서가 증언하는 믿음이 참으로 내 안에 들어왔다면 나를 고뇌하게 하고, 갈등하게 하고, 상처를 입는 게 맞습니다. 믿음이 내 욕망에 박수를 쳐주고, 옹졸함과 편견과 뻔뻔함을 무조건 옹호한다면 그게 제대로 된 믿음은 아닐 것입니다. 예컨대 복음이 처음 조선에 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로 알았습니다. 삼강오륜이 무너지고, 천륜이 무너지고, 가문이 무너지고, 나라가 무너진다고 난리였습니다. 믿음이 새로운 세계, 새로운 질서, 새로운 가치를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불가피 세상과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탐욕을 질책하고, 억울한 이들을 옹호하고, 슬퍼하는 이들과 연대하고, 분쟁을 먹이로 삼는 이들 가운데서 평화 공존을 말하는데 세상이 좋아할 까닭이 없습니다. 과연 오늘날 한국교회의 믿음이 그런 믿음인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자존감을 고양시키는 것까지야 그렇다 치고, 믿음의 동기가 자기 안일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에서가 아버지 이삭의 식탐을 섬기기 위해 사냥감을 좆아 다닌 것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믿음은 정체된 세계에 도전함으로써 필시 갈등을 유발하고 스스로 상처를 입습니다. 예컨대 랍비 출신 철학자 야곱 타우베스에 의하면, 바울 당시의 세계는 두 가지 모델밖에 없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질서 그리고 율법과 혈연에 근거한 선민 이스라엘입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이 두 질서에 정면 도전했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다스릴 메시아를 말함으로써 로마가 가진 세계 제국으로서의 힘을 약화시키는 한편, 율법과 선민의식에 터한 이스라엘 민족을 상대화시켰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바울은 두 세계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어 극심한 배척과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제3의 질서 곧 ‘복음의 세계’는 그렇게 해서 열렸습니다. 불의한 세계에서 문제의식도, 추구하는 세계관도, 비전도 없이 자기충족만을 위한 믿음은 이미 죽은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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