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 교수님, 감사합니다. [햇순] 235호(2015.9), 성서난해구 해설에 “혼돈”이란 메일명으로 교수님께 질문을 했던 박호돈 朴祜敦 목사입니다. 제가 제기한 질문에 관하여 상세하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신 것에 대하여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사야서 29장 1-12절 본문 안에 여러 명의 화자 話者가 등장하거나, 한 화자가 여러 다른 청자 聽者에게 하는 말들이 섞여 있어서 우리말 성경을 읽는 독자로서 본문 해독이 늘 어려웠는데, 교수님의 설명이 화자와 청자 구별을 해 주셔서 본문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 여쭙고 싶은 질문에는 교수님께 대한 원망과 저의 불편한 심기가 한데 섞여 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번역은 잘 해놓고 편집에서는 왜 의미를 왜곡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시편 124:1-8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개정] 시 124:1-8
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 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 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
6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이 번역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만 평소에 느낀 점은, 본문의 문맥을 고려함이 없이 각 절마다 독립된 문단으로 편집하는 것은 (위에 인용된 [개정]에서 보듯이) 절을 찾기는 쉽지만 문맥의 연결은 단절되어 버리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시는 산문체와는 달리 시적 분위기를 살리는 행 行 구분을 하여 시 문체로 편집을 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여전합니다. 아마 성경을 편집하여 출간하는 출판사들마다 어떤 사정은 있을 것입니다만, 저는 모든 출판사들이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편집을 해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지 분량이 넘쳐 책이 커진다느니, 찬송가와 합부할 때 책이 너무 무겁게 된다느니, 출판 비용이 더 든다느니, 이런 것들은 성경 본문의 의미 전달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행 行 구분뿐만 아니라 연 聯 구분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성경 편집자들이 혹시 모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위 본문을 [성경전서 표준 새번역](1993)으로 읽으면 독자의 느낌이 전혀 달라집니다. 아니, 느낌 뿐 아니라 시 전체의 의미가 전혀 달리 전달됩니다. 저는 이것을 [햇순] 235호 (2015.9), “성령강림절후 열여덟째 주일 (2015.9.27.) 시편 본문에서 발견하였습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1) 시 124:1-8

1 이스라엘아, 대답해 보아라.
주님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우리가 어떠하였겠느냐?

2 "주께서 우리 편이 아니셨다면,
원수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났을 때에,
3 원수들이
우리에게 큰 분노를 터뜨려서,
우리를 산 채로 집어삼켰을 것이며,
4 물이 우리를 덮어,
홍수가 우리를 휩쓸어 갔을 것이며,
5 넘치는 물결이
우리의 영혼을 삼키고 말았을 것이다.”

6 우리를 원수의 이에 찢길
먹이가 되지 않게 하신
주님을 찬송하여라.
7 새가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남같이
우리의 목숨을 건져내셨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풀려났다.

8 천지를 지으신 주님이
우리를 도우신다.

저는 [햇순]에서 시편 편집 編輯이 본문 파악에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하는 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햇순] 9월호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성령강림후 열여덟째 주일의 시편 124편이 1절, 2-5절, 6-7절, 8절, 이렇게 네 연 聯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이러한 연 구분 편집에서 저는 어쩌면 각 연마다 서로 다른 이들이 부른 찬송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각 연은 성가대원들끼리, 혹은 성가대원들과 회중이 서로 화답 和答하는 찬송이었을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제 생애에서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1절의 질문은 어쩌면 성전 성가대의 솔리스트가 부른 것처럼 생각됩니다. 2-5절은 성가대원 전원이 그 솔리스트에게 화답한 것처럼 들립니다. 6-7절은 회중의 화답처럼 들립니다. 8절은 성가대와 회중이 함께 부른 송영처럼 들립니다. 저의 이런 추측이 단순한 추측일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시편 124편에 화답의 분위기가 있는 것만은 과히 틀릴 것 같지 않습니다.

제가 교수님께 원망을 할 수밖에 없는 저의 불편한 심기를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것은 교수님께서는 한 때 대한성서공회에서 출간되는 성경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성경책 간기에 나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아마 표준 새번역 번역과 개역 개정과 공동번역 개정 작업 등에도 참여하신 줄 압니다. 그것도 단순히 한 교단 대표로서가 아니라 책임 실무자로 말입니다. 그런데 번역이나 개정은 잘 해 놓으시고 왜 편집은 엉망으로 해 놓으셨느냐 하는 겁니다. 문맥을 무시한 절 별 편집, 행과 연을 무시한 시의 편집이 바로 그러합니다. 성경 번역이나 개정에 참여하셨던 분들은 자신들의 작업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고 봅니다.

박호돈 朴祜敦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