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묵 님,

일반적으로는, 질문을 주시는 분들을 보면 그런 질문을 가지게 된 배경을 말씀해 주시는데, 신현묵 님은 좀 수상한 본문 인용에 대해 딱 궁금하신 것만 물으시고, 또 저에게 정확한 답변을 요구하시기보다는 저의 개인적인 “견해”를 확인하고 싶어 하신 것을 보니, 귀하는 틀림없이 이 방면에 고수 高手이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특히 성경을 잘 아신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그런 견해를 말하는 것을 저도 가끔 듣습니다. 그래서 저는 귀하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그 제목을 “신 神들의 범죄 犯罪”라고 붙여보았습니다. 좀 도발적인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범죄”라고 말입니다.

구약의 문맥에서 하나님께서 누구를 ‘엘로힘’이라고 하셨는지, 예수께서 유대사람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구약의 그 본문을 어떻게 활용하셨는지, 그리고 구약의 맥락에서 그 본문이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지적하는 것으로 저의 개인적 견해를 밝히도록 하지요.

우선 우리의 대화에 참여하는 다른 독자들을 위해 귀하의 질문을 좀 더 구체적으로 진술해 보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사람을 일컬어 “신 神” 곧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요한복음서 10:31-36을 보면, 유대 사람들이 예수께 대들지요. 자기들이 예수를 돌로 쳐 죽이려 한 것은 예수가 선한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기 때문이라고, 예수가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니 신성모독이라는 것이지요(요 10:33).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율법 책, 곧 우리가 지금 구약이라고 부르는 그 책에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신들이라고 하였다”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고(요 10:34),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신이라고 하셨다”고(요 10:35), 그런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여 세상에 보내신 사람이,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말을 가지고, 너희는 그가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하느냐?”(요 10:36)고 응수하셨지요. 아마도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재판관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에 여기에 반박을 못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의 배경은 시편 82편입니다.

예수께서는, 시편 82편에서 하나님께서 법을 집행하는 재판관 裁判官들을 두고서 하신 말씀을 빗대어서 유대사람들의 신성모독 시비에 맞서고 계십니다. 법을 집행하고 정의 正義를 지킬 책임을 가진 재판관들을 일컬어 하나님께서는 “신 神들”(‘엘로힘’, “하나님”)이며 “지존자 至尊者의 아들들”(‘브네이 엘욘’,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재판관의 임무가 그만큼 신성한 것을 일컫는 것이기도 합니다.

시편 82편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법정에 나오셔서 재판을 담당한 재판관들을 꾸짖으십니다. 재판관들을 재판 裁判하십니다. 재판관들을 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임무가 그만큼 신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시 82:1). 재판장을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출애굽기에도 나옵니다.

6 상전이 그를 데리고 재판장[각주: 히, ‘엘로힘’, “하나님”]에게로 갈 것이요 또 그를 문이나 문설주 앞으로 데리고 가서 그것에다가 송곳으로 그 귀를 뚫을 것이라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개역] 출 21:6)

8 도적이 잡히지 아니하면 그 집 주인이 재판장[각주: 히, ‘엘로힘’, “하나님”] 앞에 가서 자기가 그 이웃의 물품에 손 댄 여부의 조사를 받을 것이며 9 어떠한 과실에든지 소에든지 나귀에든지 양에든지 의복에든지 또는 아무 잃은 물건에든지 그것에 대하여 혹이 이르기를 이것이 그것이라 하면 두 편이 재판장[각주: 히, ‘엘로힘’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이요 재판장[각주: 히, ‘엘로힘’, “하나님”]이 죄 있다고 하는 자가 그 상대편에게 갑절을 배상할찌니라 ([개역] 출 22:8-9)

하나님께서 재판관들을 재판하시는 것은 그들이 공정 公正하지 않은 재판을 되풀이하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편을 드는 재판을 허기 때문입니다(시 82:2). 가난한 사람, 가련한 사람, 궁핍한 사람, 고아의 권리를 지켜주지 않고 공의 公義를 베풀지 않기 때문입니다(시 82:3-4). 재판관들이 이러한 신성한 임무를 깨닫지도 못하고, 분별력도 없이, 어둠 속에서 헤매고만 있으니, 땅의 기초가 송두리째 흔들렸다는 것입니다(시 82:5). 이것이 신들의 범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신들 곧 재판관들에게 선고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신들이었고, 지존자의 아들로 대우를 받았지만, 이제 그런 신분은 없다. 너희들도 평민이나 다른 통치자와 다를 바가 없다”(시 82:7). 재판관들의 신성화 神聖化되었던 권위가 무너지자, 백성들이 일제히 환호하고 하나님께 재판을 요청합니다.

하나님, 일어나셔서,
이 세상을 재판하여 주십시오.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 82:8)

민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