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라 걱정하는 이들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썩어도 너무 썩었다는 탄식입니다. ‘헬조선’은 그래도 약과입니다. 아예 나라가 가라앉고 있다는 탄식입니다. 외세를 끌어들여 나라를 미궁 속으로 빠뜨렸던 한말과 유사하다는 탄식도 줄을 잇습니다. 권력층의 뻔뻔함이 도를 넘어서입니다. 이 나라 최고 부자들의 파렴치가 구토증을 유발합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역사관을 바로 세우고, 진실을 추구해야 할 주류 언론들은 아예 권력과 공생하면서도 마치 시대의 선도자나 되는 것처럼 위선을 떱니다. 나라의 상층부가 이러니 사회 밑바닥에서는 막가는 인생을 사는 이들이 발호합니다.

저 옛날 예레미야 시대도 그랬나 봅니다.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눈물의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마치 태풍 가운데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쓰러진 조국의 운명을 지켜보며 내적인 고통을 겼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바빌론에 의해 먼지처럼 사라졌습니다. 예루살렘성전은 참혹하게 짓밟혔습니다. 사회 지도층은 포로로 끌려가거나 대부분이 변절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계약은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이처럼 절망이 깊은 때 의지할 곳 없는 백성들은 무슨 희망으로 산다는 말인가! 예레미야가 피눈물을 쏟은 이유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런 내적인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영혼이 정화되는 체험을 합니다. 비록 나라가 망하고, 죄악이 범람한다 할지라도 백성들 개개인이 하나님과 새로운 계약을 맺고 바르게 살면, 하나님께서는 반듯이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전의 계약이 돌판에 새겨진 것이었다면, 이제 각 사람의 마음에 새겨질 계약이라 해서, ‘새 계약’입니다.

화급하기로는 바울 당시도 다를 바 없습니다. 로마에 연금된 바울의 눈에 비친 세계는 마치 영적 전쟁으로 치열한 전장이었습니다. 하늘은 하늘대로, 땅은 땅대로 악령들이 세력을 뻗치기 위해 혈투를 벌이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처럼 강력한 적과 마주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엡 6:13-18)라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요청합니다. 불특정 다수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공동체의 구성원들인 남편들, 아내들, 자녀들, 부모들, 아비들, 종들, 상전들 등 악한 시대에 자기 역할을 감당해야 할 이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의 삶이 절박한 이들입니다. 우리 속담으로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처럼 높은 수준의 영적 무장을 주문하다니. 너무 큰 기대를 한 게 아닐까.

이들 가운데 종들에게까지 영적 자각을 주문한 대목에 눈길이 갑니다. 당시 로마는 짐승 취급도 받지 못하는 1천 만 명 이상의 노예 혹은 종들에 의해 영위되는 제국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영적 자각과 윤리로 무장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주문했다는 게 좀처럼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복음의 비밀’이 이 안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세상이 사람 취급하지 않는 이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영접하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꿈꾸게 한 게 복음입니다. 퇴락한 유대교가 외면했던 세계, 피정복민을 잡아다 노예로 부려야만 영위되는 로마 제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세계를 꿈꾸게 한 게 복음입니다. 어찌 노예들, 종들의 힘으로 그런 세계를 가꿀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 옛날 예레미야가 망한 나라 핑계로 죄악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는 백성들에게서 새 계약을 말한 것이 그러했고, 예수께서 당신을 따르는 민초들에게 하신 말씀 역시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 6:25). 염려하지 말라는 이유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이들에게 먹고, 입고, 마시는 것보다 중요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사악한 자들이 번영을 누리고, 힘없는 이들이 억압당하고, 불의가 세상을 쥐락펴락 한다면 땅의 백성들은 염려에서 벗어날 날 수 없습니다. 미래도 없습니다. ‘그 나라’가 이뤄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당장 눈앞의 염려보다 그 나라를 향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희망으로 산다면 희망은 이미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가 내일을 바라며 산다면 내일은 이미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희망이 사라진다고, 나라가 침몰한다고 탄식하는 이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