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말했다. 예수님이 성경대로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다고(고전 15:6). 그리고 사도행전은 전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남아 모인 무리는 120명이라고(행 1:15). 이 구절들을 떠올릴 때면 곰곰이 묵상하게 된다. 두 숫자 사이의 간극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라면 어땠을까.

연상되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있다. 호화로운 삶을 살던 부자와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죽은 거지 나사로 이야기. 훗날 죽어 고통을 당하게 된 부자는 아브라함과 그 품에 안긴 나사로를 보고,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어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그 말에 아브라함은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들으면 된다 답하는데 부자가 아니라 하니,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으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할 것이라고 아브라함은 말한다.

부활은 그 자체론 사람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활을 보고 부활에 대해 들었지만 부활이 진짜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일는지도. 그러다보니 부활과 영생에 대한 상상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현생의 욕구를 되비출 따름인 듯 보인다. 물욕은 황금과 온갖 보석이 가득한 천국의 상을 자극하고, 권력욕은 요한계시록의 십사만사천인이 누군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미세먼지와 환경오염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천국은 청정지역으로 어필되기도 하고, 코로나19바이러스와 알 수 없는 질병들로 인한 두려움은 병과 고통이 없는 하늘을 꿈꾸게 한다. 또 본질적으로 죽음과 자아의 소멸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영원을 희구하고 불로장생을 탐하게 만든다.

나는 예전엔 천국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에 별 감흥이 없었다. 희미하거나 부분적이지 않은 온전한 앎의 상태(고전 13:12)가 궁금하고 ‘예수님을 만나면 정말 좋겠지...’ 생각하곤 했지만 끝없는 삶에 대한 확신도 기대도 크지 않았다. 천국이 내게 점점 중요해진 건 대장암이 재발되어 죽음을 앞둔 엄마에 대한 마음이 더욱 깊어지면서다. 가슴 한 편에 늘 담고 다니던 원망이 사라지고 엄마의 사랑이 충분하다고 느껴질 때부터. 엄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즈음, 과일을 무척 좋아하는 엄마와 나는 열두 가지 열매가 맺힌다는 나무에 대해 종알거리며 마주 웃었더랬다.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천국이 급부상했고 천국에 대한 소망 게이지가 껑충 뛰어올랐다.

온갖 마음이 투영되는 곳, 그곳은 분명 천국이 아니리라. 그래서 예수님이 일찍이 딱 알려주신 것일 테다.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라고 말이다. 부활은 이 짧은 생의 자아가 붙잡고 있는 갈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부활이라 하셨고 나에게 오는 자를 살리고 나를 위하여 목숨을 잃는 자가 얻을 것이라 하셨으니, 부활은 예수이고 예수께 가는 것이고 예수만 남고 나는 죽는 것이다. 자아의 영속을 위해 부활을 바라는 자들에게 이보다 큰 모순이 있을까.

엊그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방역한다고 모두들 건물 밖으로 나와 있는데, 저쪽에서

“어머어머, 쑥 많이 났네.”

“이게 쑥이에요?”

“응~ 근데 캐 먹기엔 작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선 선생님도 화단을 가리키며 “냉이꽃이다!” 한다. 나도 시선을 돌려 보니 손가락 길이만한 줄기 끝에 하얀 냉이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산 중턱에 있어 봄이 더디 발 들여놓는 우리 집 앞마당의 매화나무도 절반은 꽃망울이 터져 하얀 꽃빛이 몽글몽글하게 가지를 뒤덮었다. 세상은 요란해도 또 한 번의 봄이 찾아와 풀꽃이 피고 움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그들을 볼 수 있고 잔잔히 기뻐할 수 있는 건, 풀꽃이 땅 속에서 씨앗으로의 생을 완전히 마쳤기 때문이고, 나무가 지난 가을 이파리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다 떨궈준 덕분이다. 죽음을 관통했을 때, 그 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