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문삼석의 동시 가운데 [그냥]이라는 짧은 시가 있습니다.

‘엄만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어쩌면 사랑은 이렇게 ‘그냥’ 좋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사랑인지도 모릅니다. 예수의 부활 사건과 관련해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이 있습니다. ‘그냥’ 그곳에 있던 여인들이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자 그 많던 이들이 예수를 떠났습니다. 제자들도 떠났습니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홑이불을 뒤집어쓰고 도망친 이도 있습니다(막 14:50-52). 절대 그런 일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예수를 세 번 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예수 곁에 함께 있은 이들이 있습니다. 몇몇 여인들입니다.

네 복음서를 종합해보면,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새벽 미명에 무덤을 찾아간 여인은 셋입니다. 그 여인들이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된 것입니다. 여인들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와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전에 예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준 여인입니다. 그녀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십자가 아래에 있었고, 예수의 시신이 동굴 무덤에 묻힐 때도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힌 지 사흘 째 되는 날 새벽 미명 시신에 기름을 바르기 위해 향료를 가지고 무덤을 찾아갔는데, 그때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된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예수의 생애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여인들이 곁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인들이 부활의 첫 목격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문삼석의 동시처럼 “그냥…”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정답일 것입니다. 사실 참된 사랑은 출생과 마찬가지로 죽음 역시 삶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참된 사랑은 죽음을 넘어서까지 삶을 신뢰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를 향한 여인들의 사랑은 그분의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제자들이 모두 도망갈 때 여인들은 십자가 아래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무서워서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지만, 여인들은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제자들은 죽은 자를 피해 달아났지만, 여인들은 죽은 자임에도 개의치 않고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죽음으로 그와의 관계도 끝난 것이었지만, 여인들은 예수가 죽었음에도 그와의 사랑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랑의 참 모습이 이러합니다. 참 사랑은 죽음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사랑이 기적을 낳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제자들은 이용 가치를 따졌지만, 여인들은 생명 자체,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보살폈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는 죽음으로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된 것이었으나, 여인들에게 예수는 비록 죽었으나 그의 삶과 그의 인격과 그를 향한 사랑은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제자들은 무덤을 두려워한 것이고, 여인들은 무덤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날도 생명이나 삶이나 인격에는 관심이 없고, 허울뿐인 명분과 이용가치에만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죽음이 창궐하는 곳에서 위태로운 생명들을 지키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오로지 정쟁에만 매달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n번방’처럼 쾌락을 사기 위해 어린 생명의 삶을 짐승처럼 짓밟는 자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전개되는 전쟁의 위협에는 허상으로 가득한 명분이 버티고 있습니다. 자국만의 이익과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부활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삶이 무엇인지는 압니다. 우리가 진정 부활의 기적을 믿는다면 생명과 삶을 극진히 사랑해야 합니다. 부활의 첫 목격자인 여인들처럼 ‘그냥’ 사랑하는 이들이어야 합니다. ‘부활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에 다름 아닙니다.